[인권교육, 살짝쿵]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계산서는 반드시 청구된다.’ 드라마 <대행사>의 한 에피소드 제목입니다. 지역 대학 출신에 배경도 연줄도 없는 주인공은 남성들이 주름잡고 있는 광고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은 채 일에만 매달립니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잠을 줄이고 밥도 안 먹고 집에도 잘 들어가지 않은 채 일에만 매달립니다. 일터와 삶에서의 스트레스와 불안은 약으로 잠재우기 일쑤죠. 지속적인 과로와 약에 의존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약의 부작용으로 수면 중 보행까지 하기에 이릅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삶의 계산서가 어느날 아침 공원 벤치에서의 기상으로 날아든 셈이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기후위기도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지구자원을 무분별하게 채굴하고 수탈해 온 인류의 발자국이 청구하는 계산서가 아닐까요?

계산서는 반드시 청구된다.

기후변화로 인해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삶이 위태로워지고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한편 아직 이 위기를 직접적인 내 문제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또한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교육에서 ‘기후위기와 인권’을 다룰 때 어떤 이야기로 시작하면 좋을지, 어떻게 참여자들이 내 문제로 귀를 기울이게 만들 수 있을지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교육에서는 지난 겨울 한파로 촉발되어 계속되고 있는 전기세․난방비 인상문제에서 출발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겨울의 갑작스런 한파에 여러분, 모두 안녕하셨나요?”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차가운 기류가 우리나라에까지 내려오면서 기온이 급강하했었죠. ‘난방비폭탄’이라는 말로 공공요금 인상의 문제, 저소득층의 생활고 가중을 중심으로 조명되었지만 모두가 기후위기의 영향을 실감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한파가 단지 비용부담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총체적인 위기임을 같이 살폈습니다.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계단과 복도로 흘러넘친 물이 얼어버리면서 이동의 공간은 이동을 위협하는 사고지점이 되기도 하고, 화장실이 얼어 공중화장실을 찾아야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아귀가 맞지 않아 벌어진 창문과 출입문, 얇은 판자벽 등 허술한 주거환경은 난방장치를 설치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난방비의 문제가 아닌 집 다운 집, 튼튼하고 안전한 주거의 문제로 넓혀서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조금 더 촘촘하게 기후위기의 영향을 들여다보면서 기후위기와 우리의 삶을 중층적으로 꿰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라고 하면 으레 등장하는 주제를 인권의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탄소중립’, ‘재생에너지’가 아닐까 합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삶의 위기는 탈탄소로의 전환을 요청하고 있으며 정부에서도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청정에너지, 재생에너지가 그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는만큼 참여자들과 그 의미와 내용을 나눠보기로 하였습니다. 많은 단어나 가치들이 그렇듯이 좋은 의미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인권보장을 위한 디딤돌이 되기도 하고 종종 ‘빛 좋은 개살구’가 되기도 하니까요.

 

기후위기 대안들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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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광고협의회-좋은 습관>

먼저 탄소중립을 주제로 한 공익광고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메일 삭제 1통당 탄소 4g 저감’, ‘핸드폰 전원 OFF로 탄소 배출 최소화’, ‘밝기 조절로 에너지 최대 20% 절약’할 수 있다며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은 ‘당신의 좋은 습관’이라고 말합니다. 참여자들은 무엇보다 공익광고가 기후위기를 개인 차원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소비된 화석연료의 양은 그 동안 인류가 사용한 화석연료의 절반에 달한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이윤을 남겨야 하는 현재의 경제질서가 지속적으로 지구자원을 추출했고 그로 인한 결과가 기후위기임에도 그에 대해서는 침묵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은 가리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나 재생에너지로 에너지원만 바꾸면 된다는 식의 논리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수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이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2022년 7월 현재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6.5%(출처. KBS <지구를 위협하는 이상 기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재생에너지 확대> 2022년 7월 27일)에 불과합니다. 재생에너지라는 말에 참여자들은 집집마다 설치, 지원을 해주는 태양광에너지판을 익숙하게 떠올렸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의아애 했습니다. 실제 이런 식의 정책은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소비를 위한 보조수단이나 전기세를 낮춰주는 하나의 방안으로써 여기게 만들뿐입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사례를 모둠토론 주제로 삼은 것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 함이었습니다. 에너지를 전환한다는 것은 에너지원만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생산, 소비하는 구조를 바꾸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난방비 폭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에너지는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재이자 공공재입니다. 그래서 한국전력이라는 공기업을 통해서 관리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2022년 4월 현재 민간발전사의 비중은 전체 전력거래량의 32%를 넘어서고 있다고 합니다(출처. 최재순. ‘발전산업의 민영화 현황’ <2023 기후정의활동가캠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민간발전사들의 역할을 키우는 일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에너지가 민영화되면 비용절감을 위한 다양한 조치들이 취해질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발전소 부지선정이나 송전탑 건설과정에서 지역민들이 겪을 피해와 고통은 물론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도 예상되는 일입니다. 에너지가 공공재가 아닌 시장의 상품이 된다면 에너지에 대한 접근이나 사용이 어려운 에너지 빈곤층은 더욱 늘어나고 삶은 더욱 취약해질 것입니다. 모두의 존엄한 삶을 위한 공동의 재화인 에너지를 얼마나,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할 것인지에 대해 시민들이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여기면서도 여전히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날씨나 기후 같은 걸 내가 어떻게 하겠어?’ 하는 마음도 들고 어디서부터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구요. 그런 한편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기후위기는 내가 매일 쓰는 전기에너지와 직결된 문제이고, 나의 주거와 먹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올 봄 때를 가리지 않고 피어난 꽃과 벌이 사라진 풍경을 보면서 느꼈던 불안감을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으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전기세 인상의 이면에 감춰진 논리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발걸음 등을 쫓는 일들이 기후위기에 맞서는 하나의 행동이 될 수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글쓴이 | 묘랑(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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