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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26일 드디어 역사적 출범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출범은 안타깝게도 행정관료들의 저항에 부딪쳐 ‘파행’이다. 직원 한 명 없이 위원장과 위원들만으로 업무를 시작하여야 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온갖 기득권에 눈먼 관료들은 인권위원회를 포위하면서 조직규모, 시행령, 인권활동가 특별임용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공격함으로써 ‘인권’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관료들은 결국 ‘국가인권위라는 조직’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국민에 대한 광범위한 인권침해 위에 구축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인권 그 자체’를 경계하고 적대시하는 것이다.
인권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들이 모두 행정관료의 저항에 부딪쳐 답답하게 막혀 있는 상황에서 인권위원회가 행정부처들과의 타협을 택하지 않고 이런 ‘파행’을 선택한 것을 우리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왠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것은 인권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갈구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기보다도 자기 능력만 믿고 외롭게 싸우는 ‘독불장군’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권위원회가 출범과정에서 겪고 있는 이 고난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4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에 이르기까지의 3년 간은 그야말로 법무부를 비롯한 행정관료들과 민간단체들과의 처절한 투쟁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법이 탄생했을 때 우리는 분명히 오늘의 이 어려움을 예견했었고 앞으로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존속되는 한 이와 같은 고난은 지속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즉 인권위원회는 언제나 고난과 함께 있는 것이고 이런 고난을 돌파해 나가기 위해 언제나 ‘인권’을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보건대 지금 인권위원회는 고립돼 있다. 이 고립의 일차적 원인이 현 인권위원회의 엘리트주의에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국가인권위원회를 기술적으로 ‘잘’ 만들기 위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많은 인권단체들을 아예 논의에서 ‘배제’했다는 것이다. 이런 흔적을 우리는 곳곳에 본다. 김창국 위원장은 이 민간단체들의 정기적 간담회 요청마저 거부했다. 인권운동가들을 위원회에 ‘자리’를 얻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정도로 치부하는 김 위원장의 저급한 인식은 인권위원회가 인권단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데 실패한 결정적 원인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당장 사고를 바꾸라고 인권위원회에 대해 주장하고 싶다. ‘올바른 인권위원회’는 엘리트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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