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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주 : 오는7월 18-20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3차 아태 지역 인권워크샵’을 맞아 워크샵의 주 의제인 지역인권기구, 국민인권기구, 워크샵 지상중계 등의 특집을 마련하였습니다.
지역인권기구(Regional Human Ri-ghts Mechanism)는 제3차 아태 지역 워크샵의 여러 가지 주제 가운데 가장 핵심적 것이다. 유엔의 권고에 따라 91년 마닐라에서 첫 아태 지역 워크샵이 열렸고 대부분의 아태 지역 정부대표가 참석하였다. 이어 93년 1월 자카르타에서 두 번째 워크샵이 열렸고 이번의 서울 워크샵은 세 번째이다. 이러한 워크샵의 궁극적 목표가 아태 지역의 인권기구를 설립하는데 있으므로 지역인권기구는 당연히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고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서울 워크샵은 과거와 달리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서울 워크샵이 93년 6월 비엔나 세계인권대회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아태 지역의 인권관련 회의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 회의에서는 지역 인권기구 설립 문제 이외에도 비엔나선언과 행동계획의 실천에 대한 평가 및 반성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둘째는 한국정부의 인권 관련 대외적 이미지 문제이다. 작년 3월의 방콕 대회와 6월의 비엔나 세계인권대회를 통하여 한국정부는 ‘인권후진국’에서 ‘인권 모범국’으로의 대외적 이미지 전환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올해 초 연이어 발생한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과 노동인권 탄압의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정부가 처음으로 주최하는 아태 지역 인권회의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는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역인권기구란 무엇인가?
지역인권기구란 유엔의 국제인권기구와 보조를 맞추어 각 지역 내에서 지역상황에 맞는 인권의 보호와 신장을 목적으로 설립한 제도이다. 거의 대부분의 정부가 외교에서 자국의 이익에 우선적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지역내의 정치 및 경제협력기구를 통해 인권의 보호와 신장을 기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48년 유엔인권선언 제정 이후 유엔인권위원회(46년 설립)는 각 지역의 회원국가가 지역의 상황에 적합한 인권헌장과 인권제도를 수립할 것을 권고하여 왔다. 한편 각 지역 내에서도 특별히 인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독립적인 지역인권기구의 설립필요성이 증대되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적 노력이 시도되었다. 그 결과 60년대 유럽인권기구, 70년대 미주인권기구 그리고 80년대에 아프리카인권기구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아태 지역은 지역내의 정치, 경제, 문화적 다양성과 지역내 정부의 소극적 태도 등으로 인하여 다른 지역에 비해 지역인권기구를 설립하는 문제가 지연되어 왔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유엔인권위원회는 국제인권단체, 아태 지역의 민간인권단체 및 아태 지역 일부 국가의 지지 하에 지역인권설립에 관한 결의안을 여러 번 통과시켰다. 93년 3월 9일 통과된 “아태 지역의 인권신장과 보호를 위한 지역기구(Regional Arrangements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 in the Asian and Pacific Region)""에 관한 결의안(1993/57)에서 인권위원회는 ‘아태 지역에서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인권기구에 관한 워크샵을 환영’하면서 ‘유엔인권센터의 자문서비스 및 기술적 지원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재원을 적극 활용하여 인권의 증진과 보호를 위한 지역인권기구 설립이 심화되도록 노력할 것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요청하였다.
아태 지역 국가의 입장
사무총장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인권기구에 대한 아태 지역 정부의 입장은 다양한데 이 문제에 대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은 아직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유엔인권센터에 보낸 공문(93년 7월 23일)에서 중국정부가 지역인권기구 설립을 위한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을 장황하게 설명한 후 다음과 같은 입장을 표명하였다.
“(a)지역인권기구에 대한 고정된 모델이 없다. 따라서 아태 지역의 현실이 고려되어야 하며 다른 지역의 관행을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 된다.// (b)지역인권기구의 설립은 모든 국가의 의지를 충분히 존중해야 하며 협의를 통하여 모든 정부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외부의 압력이나 특정국가의 의지를 다른 나라에 강제하는 것은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c)지역인권기구의 설립은 장기적으로 충분한 준비를 거쳐야 하며 불필요하게 서둘러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한편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국가들은 아직 뚜렷하게 정리된 입장이 없지만 아태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지역인권기구 이외에도 ASEAN지역에 국한한 인권기구를 만드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ASEAN 국가들은 93년 7월 23-2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각료 급 회의에서 채택한 공동선언문에서 인권에 관한 적절한 지역기구를 설립하는 것을 고려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였다. 그러나 구체적 방법은 고위실무자회의에서 결정하여 94년 7월에 방콕에서 열리는 ASEAN 각료회의에 보고하기로 하였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아태 지역 정부는 지역인권기구에 대해 분명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한국정부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번 서울 워크샵에서 대부분의 국가 정부들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가 드러날 것이라고 예상된다.
아태 지역 민간단체의 입장
한편 93년 3월 방콕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를 위한 아태 지역 민간단체(NGO)회의에서 지역인권기구에 대한 토론이 있었고 아태 지역 정부활동에 대한 권고 안에서 다음과 같은 특별권고를 제출하였다(’93세계인권대회자료집 52쪽 iX).
iX ) 아태 지역의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지역기구를 마련하기 위한 정부의 어떤 발의도 환영하지만 그러한 수단들은 다음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지역위원회가 마련되면 국제인권장전,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조약, 고문금지조약, 개발에 대한 권리선언과 기타 인권과 관련된 조약에 유보조항 없이 따라야 한다.// -지역위원회 회원국은 위에서 언급한 국제조약을 최우선적으로 비준하거나 동의하여야 한다.// -지역위원회에 대한 개인 또는 NGO의 청원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한 청원이나 탄원이 인권보호를 위한 여러 유엔기구에 동시에 탄원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지역위원회위원은 정부내의 공직을 겸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위원은 NGO와 협의하여 임명되어야 한다.// -인권조항의 이행에 관한 정부의 정기적 보고체계와 보고서의 초안작성에 NGO가 참여하여야 한다.// -지역위원회 회의와 토론은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군대, 국가 안정보장 권력을 포함하여, 어느 정부요원이나 혹은 정부의 어떤 활동도 심사와 조사대상에서 면제될 수 없다.// -지역위원회는 완전한 감사 권을 가져야 한다.// -제소를 심리할 분리된 기구가 마련되어야 한다.// -각 정부는 지역위원회에 관한 정보와 위원회가 어떻게 활동하는가를 홍보하여야 한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열린 아시아지역 정부대표 회의의 선언문은 “26. 아시아에서 인권을 신장시키고 보호하려는 지역기구를 수립할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를 다시 언명한다.” (동 자료집 59쪽 26)고 간략하게 무관심에 가까운 소극적 원칙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아태 지역 대부분의 정부는 민간인권단체와 달리 지역인권기구를 설립하는 문제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서울 워크샵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유엔과 국제 및 아태 지역의 인권운동단체의 압력을 무조건 무시할 수 없어 어떤 형태로든 부분적이나마 가시적 성과가 도출되리라고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역인권기구는 인권 보편성의 반영
지역인권기구는 인권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논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인권의 보편성 자체를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지만 ‘국가주권의 존중, 영토 보전 및 국내문제에 대한 외부의 불간섭’ 등을 매우 강조한다. 이는 인권의 특수성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인권의 개념과 이해는 사회 문화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각 나라가 처한 사회 문화적 상황의 차이를 무시하고, 서구의 자유주의 철학의 인권이해에 기반 한 일률적인 잣대로 한나라의 인권상황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가 없다는 논리이다. 이에 따라 올 4월 미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최혜국대우 연장문제에 대한 중국정부의 대응에서 나타났듯이 중국은 외부의 어떤 세력도 자국의 인권문제를 핑계로 자국의 내부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논리에 따라 중국은 인권의 보편성에 기반 하여 서방식의 지역인권기구를 설립하고자 하는 시도는 인권을 내세운 제국주의적 간섭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중국의 입장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지아 등 자국내 인권문제가 국제적 ‘간섭’을 불러올 소지가 있는 나라의 정부들이 지지하고 있다. ASEAN국가들이 별도의 지역인권기구를 만들려는 시도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한편 지난 3월 방콕대회 선언문에서 아태 지역의 NGO들은 “우리는 문화적 다원주의를 옹호하지만, 여성의 권리를 포함하여 보편적으로 인정된 권리를 무시하는 문화적 관행을 용납할 수 없다. 인권은 보편적 관심사이고, 그 가치가 보편성을 갖는 것이므로, 인권을 옹호하는 것은 결코 국가주권의 침해로 간주될 수 없다”고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아태 지역 NGO의 권고 안에 밝혔듯이 아태 지역의 민간인권단체들은 지역인권기구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아태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규모 인권탄압과 유린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에 해당국가 내부의 민간단체 또는 지역 내 민간단체들만의 연대활동 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민간단체의 실질적 참여가 보장되어야
현재 아태 지역에는 미얀마, 동티모르, 인도네시아의 노동과 언론탄압 등 몇몇 국가의 인권탄압 사례 이외에도 증가하는 난민, 외국인 노동자 등은 지역 내에서 시급하게 다루어야 할 인권현안들이 산재해있다. 민간단체들은 지역내의 정부가 참여하는 지역인권기구가 위의 문제들에 대하여, 국익이나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인권의 보호와 신장’의 관점에서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기 위한 전제에는 NGO의 참여가 있다. 유엔 인권 센타 실무자 대부분이 “NGO는 유엔의 인권관련 기구의 운영에서 약70%를 차지한다. NGO의 참여 없는 유엔 인권기구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고 인정하듯이 지역인권기구에 민간단체들이 참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아태 지역의 인권단체들은 지역인권기구가 명목상의 기구가 되어 유명무실하거나 인권의 보호와 신장이 아니라 오히려 인권의 보편성에 기반 한 지역 내 인권단체의 연대활동을 효과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기구로 전락할까봐 우려하기도 한다. 사실 지역인권기구가 지역외부의 정부나 민간단체들이 아태 지역 국가의 내부 인권문제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사전에 차단 및 방지하는 효과적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NGO는 지역인권기구의 역할과 임무의 내용 이외에도 위원의 임명, 활동감시, 보고서 작성, 인권침해 호소 및 청원 등 다양한 차원에서 참여의 권리를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아태 지역 인권헌장을 정부에 앞서 민간차원에서 먼저 작성하여 발표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러한 우려와 노력의 반영이기도 한다.
한국정부의 입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한편 작년 말부터 악화된 인권상황으로 국내외의 인권관계자를 실망케 했던 김영삼 정부의 태도가 주목받고 있다. 93년 3월 방콕 인권대회에서 인권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둘러싼 논쟁에서 ‘예상과 달리’ 한국정부 대표 신두병 인권 대사는 인권의 보편성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여 아태 지역의 NGO로부터 많은 격려와 성원을 받았다. 당시 막 출발한 김영삼 정부의 개혁분위기와 맞물려 한국정부가 이제는 자신을 가지고 아태 지역 국가와의 외교에서도 인권을 중시할 것이라는 성급한 기대감이 표출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 한승주 외무부 장관은 “한국에서 인권이 드디어 성숙에 이르렀다”고 선언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폐지논쟁, 국가보안법에 따른 일련의 구속사태 및 최근의 노동운동탄압을 고려할 때 한국정부가 이번 회의에서 지역인권기구에 어떠한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과연 김영삼 정부의 외교에 철학이 있는가? 있다면 인권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다음주에 열리는 워크샵에서 곧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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