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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보기를 좋아하는 우리들! ‘걸어서 하늘까지’로부터 ‘서울의 달’에 이르는 달동네 이야기에 숟가락질을 멈추고 숨죽이고 들여다보는 우리들! 그런 우리들에게 비춰진 달동네의 모습이란 대문 없는 골목이 있고 잘생긴 건달이 있고 신데렐라 꿈을 꾸는 아가씨가 있고 인정의 치맛 폭이 넓기만 한 손 두툼한 사람들이 있고 가끔 왕자님이 다녀가기도 하는 곳이다. 달과 가깝기에 희망과 인정을 찾아 오르려 하기에 달동네란 이름이 붙은 것일까? 아무튼 대책 없는 훔쳐보기는 관두고 제대로 이곳을 들여다보자.
서울시 관악구 봉천 9동,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높은 경사 때문에 차도 사람도 허리가 휘어진다. 엔진이 타는 듯한 냄새를 맡으며 종점에 이르면 성냥갑 같은 집들이 빼곡이 들어찬 동네가 한눈에 들어온다. 밤에는 특히 산동네 가옥들에서 나오는 불빛이 한 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는 듯한 광경을 연출한다. 대문과 변소문이 나란히 줄서 있는 거미줄 같은 골목길을 돌아들면 고함소리로 꽉 찬 ‘나눔의 집’을 찾을 수 있다.
젊은 대학생 선생님들의 소리에 아랑곳없이 우당탕탕 거리는 아이들, 한번 더 노래를 하는 아이들, 그래도 뒷 청소를 하겠다고 빗자루를 들고 설치는 아이들 소리로 공부방으로 변한 강단의 십자가조차 흔들거리는 듯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지나가고 나면 책가방을 든 어머니들이 달려온다.
장사하다 늦었다고 직장에서 일이 밀렸다고 텔레비젼보다 깜빡 했다고 들어서자 마 자 늦은 이유를 한 보따리 나누고 시작하는 일은 받아쓰기다. ‘어머니교실’에선 한글기초와 글짓기, 간단한 산수를 가르친다. 기역, 니은을 어렵게 떼고 글짓기를 할 수 있게 된 어머니들이 가장 많이 쓰는 글은 “부모님 날 낳아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부모가 되니 부모 속을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날 가르치시지 않았는지 원망스럽습니다”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그것도 딸로 태어난 죄 때문에 배우지 못한 것이 한스럽기 때문이다. 조는 일도 없고 숙제를 거르는 일도 없는 세상에서 제일 착한 학생들이고, 배움의 기쁨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들이다.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이분들을 보면 “내가 언제 이만큼 무엇을 배운다는 데에 환희를 느껴본 일이 있었나”를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나눔의 집의 가장 큰 재산은 함께 하는 이웃들이다. ‘가정 결연 사업’으로 묶여진 후원자들은 무의탁노인, 소년, 소녀 가장들에게 생활비, 치료비 등을 지원하고 삶의 벗이 되고 있다. 어떻게 알고 찾아와서 후원을 자청하는 택시기사도 있고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된 후 사람들을 불리는데 신이 나서 한 기업의 절반이상의 사원이 후원자인 경우도 있다.
나눔의 집의 작은 마당에는 신문지, 플라스틱, 병 등을 따로 따로 모으는 바구니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 신문지를 가져다 파는 할머니가 계시다고 하여 신문지 한 장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이 나눔의 집 사람들이고 알뜰살뜰 재활용품을 나누고 사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나눔의 집은 산동네 사람들이 몰라서 당하는 일, 부당한 일, 특히 재개발 사업에 관한 일들에 대해서는 자연스레 해결사노릇을 담당한다. 또 하나 가장 특기할 일은 건설노동자공동체를 만든 일이다. ‘나레건설’(나누며 섬기는 건설노동자 공동체두레)은 나눔의 집 지붕 한켠에 작은 사무실을 두고 있는데 산동네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설노동자들의 자립, 자활, 인간화를 위한 협동조합이며 최상의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전문 건설회사이다.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만이 아니라 올바른 건축문화를 세워나가고자 하는 포부를 담고 있으며 가지고 있는 최대 자본은 정직과 성실, 서로 나누고 섬기며 살고 싶은 마음들이다.
대한성공회 산하에는 이와 같은 나눔의 집이 봉천동만이 아니라 상계동, 삼양동, 인천 송림동에도 있다. 가장 오래된 곳은 상계동(88년 9월 시작)이고 봉천동 나눔의 집은 91년에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협동조합공동체로서 삼양동에는 ‘실과바늘’이라는 봉제공장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대장 예수를 닮으려는 몸짓들이 모여서 ‘나눔의 집’이라는 방 한 칸을 마련한 것이다. 외롭고 힘든 사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언제든지 머물 수 있는 방 한 칸, 그만큼 나눔의 집은 작고도 푸근한 곳이다. 그러나 속상한 일들이 어디 한 두 가지랴! 이곳에 있는 ‘한숨’을 들어보자.
빈민들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란 제 다리 긁기이고, 지역에 자리잡은 복지관이란 것도 주민들의 생활과는 거리가 멀 때가 많다. 말벗도 없이 홀로 사는 노인들, 그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 누가 거두어 주나 하는 걱정으로 속이 답답하다는 신부님, 사랑 받을 나이에 삶의 고달픔을 먼저 안 소년, 소녀 가장들, 부모가 있어도 갈 데가 없어 무작정 거리를 헤매며 본드나 범죄의 늪으로 빠져드는 아이들, 재개발로 위협받을 이곳 사람들의 일터와 삶의 방식···.
이곳에서 피어오르는 한숨의 줄기가 우리의 가슴에 비를 내릴 수 있다면 이 더위, 이 가뭄이 좀더 빨리 가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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