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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자 : 서 준 식(인권운동 사랑방)
<인권교육의 필요성>
▲인권교육과 인권운동
어디서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만신창이인 우리 사회의 인권현실은 확실히 인권교육을 절박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 인권의식은 결코 배우지 않는 직감이나 양식만으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간혹 양식 있고 지성적인 ‘민주인사’나 종교인의 무의식 속에까지도 병균처럼 뿌리깊게 박힌 차별감정과 반 인권사상을 감지하곤 한다. ‘인권교육’은 우리에게 매우 생소한 말이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새로운 영역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인류에 있어서 아주 오래된 문제들이다.
인권의 존재를 좌우하는 기본조건은 ‘자유’와 ‘평등’이다. 대체로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나 그러했듯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자유롭지도 않고 평등하지도 않다. 국제관계는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에 지배되고 있으며 각 국민국가들은 기본적으로 특권자들을 위한 강제적 통치기구를 그 본질로 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커다란 힘이 항시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이 지구에서 ‘인간의 권리’라는 주장 혹은 인권의 이념이라는 것은 근본에 있어서 ‘진보이데올로기’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권리’를 배운다는 것, ‘인간의 권리’를 생각하고 그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완성판인 하나의 진보이념을 통째로 배워 삼키는 일과는 다르다. 그것은 누구나 가 동의하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라는 원칙으로부터 시작하고 하나 하나의 구체적인 현상을 통하여 인권의 구현을 방해하는 이 세계의 억압구조를 깨닫는 것이다. 또한 그 억압구조가 끊임없이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만들어내는 그럴싸한 레토릭(궤변)의 정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비판의식을 튼튼히 키워나가는 일이다. 이것은 국제적인 지배질서에 대해서도, 각 국민국가 내의 강제적 통치에 대해서도 진정하고도 근본적인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우리 나라를 비롯한 많은 독재국가에서는 인권교육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것이며 다른 일부 나라들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인권교육을 애써 ‘체제내화’시키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인권교육은 교육이면서 인권운동의 일부분이다. 그것은 인류의 인권문제를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결해 나가는, 인권운동의 핵심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우리의 미래를 짊어져 나갈 많은 어린이들이 기본적인 인권의 의미를 깊이 받아들일 때 국제적 규모의 인권운동은 점차 더욱 분명한 정당성을 확보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권교육은 그 본질에 있어서 변증법적 교육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참된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구조를 고쳐나가는데 참여할 스스로의 잠재력을 의식하면서 비판적 사고와 아울러 도덕적 헌신을 갖춘 인권옹호의 투사가 자라날 것이다.
인권교육은 항상 세계적인 규모로 전개되는 거대한 인권운동과 조화를 이루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어린이에 대한 인권교육
인권교육은 어른에게는 물론 어린이에게도 필요하다. 그러나 인권교육은 일차적으로 어린이를 위한 것이며 학교에서 제도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단순히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누리는 권리. 이것이 ‘인권’의 정의다. 어린이(만18세 미만-‘어린이의 권리조약’ 1조)도 ‘사람’인 이상 인권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노릇이지만 이 당연한 노릇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생소하기만 하다.
유구한 봉건시대, 일본제국주의의 통치 그리고 50년에 이르는 독재의 시대를 겪어온 우리의 교육은 어린이들에게 ‘건방지지 말 것’을, 자유가 방종에 흐르기 쉬움을, ‘악법도 법’임을 가르쳐왔고 ‘권리’라는 개념은 없이 의무만을 강요해 왔다. 많은 교사를 포함한 어른들 의식 속에서 ‘교육’은 어린이에 대한 ‘자비로운 관리’이다. 어린이를 교육과 인권의 주체로 인식할 수 없는 이런 풍토에서 ‘인권교육’이라는 발상은 위험천만한 것으로서 차가운 눈총을 받게 마련이다.
어린이의 권리 옹호론은 종전에 때로 무권리자인 어린이에게 얼마만큼 권리를 부여할 것인가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런 전제는 원칙과 예외가 물구나무 서 있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어린이는 ‘사람’이다. ‘사람’인 이상 인권을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어른과 똑같다. 인권에 있어서 어른과 평등한 어린이는 ‘나이’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그 인권에 불가피한 한도의 구체적 제한을 받을 뿐인 것이다. 어린이가 인권의 주체라는 이런 전제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인권교육’은 별로 큰 의미가 없을 것이 뻔하다.
누구나 국가나 강자의 인권침해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이 보장받는 인권항목을 우선 알아야 하고 인권을 회복하려는 높은 인권의식이 있어야 함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같은 이치로 어린이는 스스로의 인권을 국가나 어른들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공부와 연습과 놀이를 통하여 인권의식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어린이의 단계에서 인권으로 배운다는 것은 어린이가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지키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자신 주위의 인권침해 현상에 대하여 분노하게 됨을 의미한다. 그런 어린이는 성장하여 험한 사회로 진출할 때 스스로 인권을 잘 지켜나갈 수가 있을 것이며 나아가서 타인의 인권도 소중하게 여기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또한 어린이는 인권교육을 통하여 세계를, 인권의 구현을 가로막는 힘의 정체를,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참인가를 깨치고 사회의 권력구조에 관한 비판의식을 터득해갈 것이다.
어린이들은 그들에게 ‘의견 표명의 자유’(조약 12조)가 있고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조약14조)가 있고 ‘결사 및 집회의 자유’(조약 15조)와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권리’(조약 16조)가 있고 상당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조약 27조), ‘여가, 놀이 및 문화적 생활에 관한 권리’(조약31조)등등이 보장되어 있음을 알게 될 때 부모의 이혼문제에 의견을 제시할 수 없고 부모를 따라 주일마다 교회에 가야하는 현실에, 자기 친구가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현실에, 방과후에는 빈틈없이 학원에 다녀야 하는 현실에 괴로워할 것이다. 어린이는 이렇게 해서 세상을 배우기 시작하고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권리의 주체이어야 할 어린이에 대한 인권교육은 그들 내부에 주체성을 키우는 교육이다. 왜 인권이 구현되기 어려운가를 진지하게 고민케 하는 인권교육은 어린이들에게 비판적 통찰력과 그것 없이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참된 이상을 선물할 것이다. 사회적 전망과 따라서 사회에 있어서의 자신의 역할을 깨닫게 할 것이다.
어린이에 대한 인권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어린이는 유아부터 고등학생에 이르는 여러 단계에 걸 맞는 방법과 강도로 ‘세계인권선언’과 ‘어린이의 권리조약’을 체계적으로 다양한 방법과 실습을 통해 되풀이 배워야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나이에 맞는 여러 가지 다양한 교재(장난감, 그림책, 비디오테이프, 만화, 놀이, 교과서 등)가 개발되어야 한다.
유아기 초등학교 저학년에는 자기를 인권의 주체로서 자리를 매기는 감성과 반 차별의 이미지를 키우는 교육에 중심이 두어져야 할 것이다. 즉 인간으로서의 긍지(자기긍정의 논리)는 인권의 주체로서 자라는 데 불가결한 조건이며 유(類)의 감성은 주위 사람을 자기와 같은 ‘사람’으로 느끼고 존중하게 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놀이를 통해 성장해야 한다.
또한 직업, 신분, 피부색, 언어, 신체조건, 성 등에 있어서 평등을 납득할 수 있는 반 차별의 이미지를 여러 가지 놀이를 통해서 어린이 내부에 키워준다. 검둥이, 계집애, 문둥이 등 차별용어의 시정이 의식적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에게는 이와 같은 기조에 더하여 만화, 비디오 등에 충분한 설명과 사례를 담아 ‘세계인권선언’, ‘어린이 권리조약’의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되어야 하며 서로 사이좋게 살아가는 ‘세계공동체’의 설계를 공동작업으로서 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 속에서 개인으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와 책임에 대한 교육이 있어야하고 평화(생존권), 민주주의와 법, 차별, 사상 양심의 자유, 환경, 여성 등 개별주제에 대한 토론과 상황극, 모의재판 등이 가능할 것이다. 이 무렵부터 어린이 스스로가 ‘어린이의 권리조약’을 토론, 비판하는 프로그램도 가능할 것이며, 어린이들 스스로가 ‘조약’에 의거하여 부당한 억압을 법원에 고소·고발하거나 헌법재판소에 소원을 제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영화를 함께 감상하면서 영화 속에 나오는 인권침해 사례를 집어내는 토론도 나쁘지 않다.
고등학생에게는 이에 더하여 인권의 역사, 여러 가지 인권보장제도의 메카니즘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에 진출하기 직전 마지막 교육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사회적 억압, 부당한 공권력으로부터 자신과 이웃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실천적 지식(가령 피의자 피고인의 권리 등)이 필요하다. 인권이 구현되지 않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한 토론은 고둥학생에게 필수라 하겠다.
이 모든 교육이 실제로 해보는 산 교육으로서 이루어져야 한다. ‘권리’는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도 지각할 수도 없다. 실습의 장은 가정이나 학교를 넘은 넓은 세상으로 열려 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도덕’ 과목을 ‘인권’ 과목으로!
이제 우리는 정부에서 할 의사가 전혀 없는 인권교육을 우리 손으로 하나씩 시작하자. 중·고등학생들에게 서어클에서, 야학에서, 주변에서······. 그러면서 한편으로 과감하게 정부에 어린이에 대한 인권교육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 나라 중학교 과정에는 ‘도덕’이라는 과목이 있으며 고등학교 과정에는 ‘윤리’라는 과목이 있다. 나는 ‘윤리·도덕’의 이름 아래 반 인권적 이데올로기로 가득 채워진 이들 과목을 ‘인권’이라는 과목으로 대체하기 위한 거대한 운동을 제안하고 싶다. 인권은 삶의 모든 영역에 걸친 인간권리를 포괄하는 것으로서 학생들에게 대단히 유용한 교육이 될 뿐 아니라 그것은 매우 훌륭한 윤리·도덕교육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권교육은 ‘교육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권교육은 어린이에게 예언자의 예지와 성녀의 사랑의 정신과 반체제 지식인의 비판정신을 선물할 것이다. 어린이에 대한 인권교육, 그것은 우리에게 밝은 21세기를 약속해 줄 하나의 중요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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