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최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칭찬과 우려를 한몸에 받고 있다. 최종길 교수,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의 진실에 접근해 가는 노력이 전자라면, 의문사 유가족들의 불신과 내부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은 후자일 것이다.
우리는 위원회가 떠맡고 있는 그 역사적 무게에 대해 알고 있다. 한 사건 한 사건의 의문사가 위원회에 진정되기까지 유가족들과 관련자들이 진상규명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음에도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한스러움과 저주와 원한을 담고 있다. 그런 사건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성’과 ‘공권력의 부당한 개입’이라는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잣대로 재단되기에는 너무도 큰 역사의 무게를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미약한 권한과 시간적 제약, 인력의 불충분함을 안고 있는 위원회에게 80여건 진정사건 모두를 해결하라고 주문하지 않는다. 출발한 위원회가 산처럼 무거운 역사적 과제를 조금이라도 전진시키기 위해서는 이 법률과 위원회를 탄생시킨 주역들인 유가족과 민주단체들의 협조, 국민적인 지지와 응원을 등에 업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자료를 갖고 있는 조사대상기관의 문턱을 넘을 수도 없고, 핵심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할 수도 없는 그 상황은 충분히 국민에게 호소할 수도 법률 개정도 할 수 있는 사안이다.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에는 개별 사건의 관련자와 6하 원칙을 밝히는 일로 족하지 않다. 사건의 발생원인을 야기한 정치적 배경과 구조, 은폐조작 과정의 핵심라인도 밝혀야만 한 사건이라도 해결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유가족들과 국민들은 녹화사업과 관련한 개별 사건의 진실만이 아니라 그 녹화사업 자체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위원회가 결별해야 할 것은 성과에 매달려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이다. 폭과 깊이 있는 진실 캐기,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뒤의 일은 정책적 과제로 남기는 것, 그것이 지금 위기의 위원회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