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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술서는 이덕우, 이기욱 변호사가 독일 베를린에서 백씨를 직접 만난 자리에서 작성한 진술서입니다. 백씨는 두 변호사에게 두 건의 진술서를 썼으며, 이 진술서는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는 데 불필요한 약간만을 제외한 것으로 맞춤법 틀린 부분을 교정한 것, 개인정보를 가린 것 외에는 원문 그대로임을 밝혀둡니다.-편집자 주
성명: 백흥용(일명: 배인오)
66****-*******
본적: 용산구 서계동 ***
주소: 마포구 서교동 ***
본인은 1994. 11. 5. 베를린 쇤베르크 호텔 42호실에서 이기욱, 이덕우 입회 하에 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 프락치활동과 양심선언 경위 등에 관하여 사실대로 진술하고자 합니다.
친구관계-가장 친한 친구로 전승희(31세) 등이 있음.
취업경력-대성철공소, 동아일보 신문배달(등촌 보급소), 전사개발(인쇄공 보조), 기타 선반공으로 영세철공소에서 근무
운동을 하게 된 구체적인 동기-반월 공단(전사개발)에서 파업 후 건강이 좋지 않아 운동하던 친구 신효실의 소개로 박종철 열사 추모사업회에서 일하게 됨.
프락치로 활동하게된 동기- 본인이 제작한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 상영문제로 미국방문 후 귀국하자 안기부 직원들에게 연행되어 조사 받음. 미주에서의 활동 등에 대하여 조사 받으며 미주지역 범청학련과의 연계 등에 대하여 추궁 받자 공포심을 느낌. 또한 부산 안가에서 3일간 수사관 2명이 교대로 철야조사를 하며 잠을 재우지 않고 폭언을 하는 등으로 실신할 지경에 이르렀음. 그런데 뚜렷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였는지 안기부에서 같이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고 출세하도록 도와주겠다고 회유함. 그리고 회유가 제대로 되지 않자 큰형이 도피하여 살고 있는 집에서 나오는 장면 등을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수배 중인데 언제라도 잡을 수 있으나 협력한다면 불문에 붙이겠다고 협박하여 고민하다가 결국 굴복하여 협력하기로 함.
안기부 안가-부천 안가는 부천시내에서 외곽으로 벗어나며 고개를 숙이라고 하며 밖을 보지 못하게 하여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함. 해운대 안가 역시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함. 낚시터 파주 광탄 양어장이라고 부름. 광탄 정류장에서 택시로 약10분 정도 걸림.
구체적인 프락치 활동 내역- 2일 간격으로 안기부 직원들에게 전화하여 운동권의 동향, 개인적으로 접촉한 운동권 인사들의 사생활 등보고.
안기부 직원들의 지시에 의하여 일본 방문, 조총련 및 한총련 등 간부 접촉, 정보 수집, 보고-안기부 직원들의 실명 여부는 모름, 단 그들이 서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을 뿐임.
94. 2. 말부터 출국하기 전인 같은 해 8. 말까지의 행적-과장의 지시에 따라 자신이 프락치로 오해받을 소지는 있으나 억울하다고 해명하는 직접적 믿을 만한 대상자를 상대로 새로운 프락치를 물색하는 작업을 함. 7,8 명을 대상으로 물색하였고 최종적으로 2명이 일할 의향이 있어 보고하였으나 포섭되었는지 여부는 모름.
94. 9. 1. 출국 후의 행적- 출국 후 범청학련에 전화하여 방문의사를 밝혔으나 겁도 나고 갈등이 생겨 미행이 있을지 모름으로 따돌리기 위하여 지하철을 바꾸어 타는 등으로 시내를 돌아다님. 양심선언을 할 것인가, 그리고 장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 생각을 정리하기 위하여 주로 밤 기차를 타고 함부르크, 로마, 덴마크, 노르웨이 등과 체코,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구권을 돌아다님. 10월 19일 박성희 씨의 집으로 찾아가 신분을 밝히려 하였으나 말하지 못하고 베를린에서 안기부 직원들에게 발각되어 가지고 있던 비디오테이프의 내용이 밝혀질 경우 위험하므로 중요한 물건이라며 박성희 씨에게 보관시킴. 그 다음날 박성희 씨의 집으로 전화하였는데 마침 생일이라며 저녁 초대를 받았는데 비디오테이프를 틀어보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추궁하여 신분을 밝히고 양심선언을 하고 싶다고 함.
프락치 의혹을 받고 있음에도 범청학련에 접촉하라는 지시를 한 이유- 과장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는 알 수 없음. 단 과장의 신임을 얻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하였고 과장 역시 크게 신뢰하고 있었음. 그리고 경험 삼아 유럽여행을 하고 그 기회에 범청학련의 분위기를 알아오라는 지극히 단순한 지시였음. 또한 본인에 대한 기사 등으로 프락치로 오인 받고 있으나 가명을 사용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였음.
양심선언을 하게 된 동기- 안기부 직원들의 협박과 회유에 못 이겨 프락치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차츰 갈등을 느끼게 됨. 그리고 점차 언젠가는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안기부 직원들의 얼굴을 촬영함. 그리고 직원에게는 비디오카메라가 고장나 수리하려고 가져왔다고 둘러댐. 이때까지는 명확히 양심선언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하였음. 그런데 김은주 씨 남매를 구속한다는 말이 없이 오히려 김은주 씨 체포현장 근처로 불러내 감시하며 지휘한 사실을 늦게 알고 극도의 배신감을 느꼈음. 또한 TV뉴스 등에서 대대적으로 남매간첩 단 사건으로 보도하는 것을 보고 큰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생각에 공포심과 양심의 가책으로 혼란상태에 빠짐. 또한 인권운동사랑방 등에서 뒷조사를 하고 프락치라는 기자회견을 갖는 등 정체가 탄로 날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과장 등은 시간만 흐르면 된다고 하며 지방으로 피신시키고 직원들로 하여금 감시케 하는 것을 보고 언젠가 양심선언을 못하게 되었음. 따라서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으면 그 때 양심선언을 하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중 갑자기 베를린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황급히 비디오테이프를 숨겨 가지고 출국하였음.
출국 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방황하던 중 이제 안기부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는 판단을 하고 베를린에서 양심선언을 하기로 결정하고 양심수후원회원 등 교포들의 도움을 받아 녹색당의 후원으로 베를린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함.
이상 진술내용은 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상세히 밝히지 못 한 부분에 대한 구체적이며 자세한 것은 본인 자필의 진술서와 본인의 동의하에 녹화된 비디오테이프와 녹음테이프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1994. 11. 5.
진술인 백흥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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