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백흥용씨가 김삼석 은주 씨와 가족분들께 드리는 편지(전문)
내용
"어법에 맞지 않는 부분 중 명백하게 틀린 부분은 그대로 쓰는 대신 <> 안에 수정을 하였고, 뜻이 통하는 곳은 그대로 가감 없이 실었다(편집자).

저의 죄가 너무 무거워 무슨 말로 사죄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날씨가 몹시 싸늘해졌습니다. 감옥 속에는 한 겨울 꽁꽁 얼어붙은 날씨지요. 간첩누명을 쓰고 감옥 속 추위에 몸 움츠리며 고생하실 김삼석 씨를 생각하면 여기까지 와서 편안히 있는 나의 육체를 학대하고 싶어지곤 합니다.


안기부원 불러주는 대로 간첩조작 진술서 써 내려가

아침에 멍한 상태로 눈을 뜹니다. 정신발작 증세까지 일으키며 갈등하고도 저는 결국 안기부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안기부 지하에서 살인적인 고문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진술서에 서명을 거부하던 김삼석 씨에 비해, 저는 안기부 비밀안가 쇼파에 앉아 안기부원이 불러주는 대로 김삼석 씨와 은주 씨를 간첩으로 조작하는 진술서를 써내려 갔었습니다. 안기부의 지시만 내리면 움직이는 로봇이 되어 착하고 양심적인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동지들을 배반하며 간첩으로 조작하는 작업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더러운 죄가 내 온몸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몸의 죄를 모두 밝히고 나니, 몸에 힘이 빠져서 아침에 멍한 상태로 눈을 뜨곤 합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솔직하고 깨끗한 정신이 나의 온몸으로 들어와 힘을 내리라고 믿습니다. 김삼석 씨와 은주 씨가 간첩누명이 벗어져 무죄가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힘을 내겠습니다.


안기부, 간첩조작사건 ‘보도’에 압력

지금 안기부에서는 저의 양심선언을 빛 바라게 하기 위해 보수언론사들에게 보이지 않은 압력을 가해 저의 폭로기사를 못 내게 하고, 저의<에> 대한 온갖 거짓선전들을 해대며 안개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제가 베를린에 시찰 겸 여행 나오게 된 것도 저 혼자서 한 일이라고 안기부는 말합니다. 그러나 안기부에서 일한 사람들, 특히 안기부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안기부의 승인 없이는 절대 해외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게 국내에서 원천 봉쇄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안기부는 제가 90년도에 제 발로 협조하겠다고 찾아갔고 김삼석, 은주 씨를 제가 제보해서 구속했다고 하며, 올 초에 안기부와 저와의 관계는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합니다. 이러한 속 들여다보이는 유치한 안기부의 거짓말에 여러분들께서는 헛갈리지 않는다는 걸 믿습니다. 하지만 안기부원들도 자랑하듯이 “안기부는 살아 숨쉬는 인간만 만들어내지 못하고 어떠한 것도 만들어낸다‘는 조직입니다. 그러므로 안기부의 게임에 넘어가지 않게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안기부, 협력자 비밀관리 철저

제가 국내에서 안기부의 비인간적인 면들을 폭로하지 못하고 해외에 나와서 폭로한 점에 대해 잘 이해되지 않는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되어 여기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경찰이나 다른 기관에서는 양심선언을 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유독 안기부에서 지금까지 발표하거나 담당한 사건들 중에 조작의혹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들을 폭로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안기부에서 일하는 것을 본인들에게 큰 자부심을 갖게 해주며 자신의 양심을 무디게 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사상교육을 시킵니다. 둘째, 안기부의 비밀을 폭로할 경우를 대비해서 사전에 자신이 담당했던 사건들을 자신이 자발해서 한 것처럼 직접 진술서를 쓰게(안기부원이 불러주는 대로 써야 됨)하며, 자신이 자술서 쓰는 모습과 월급 주는 모습 등을 자신촬영을 해 놓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내용도 모르는 서명서에 서명하게 하고(2년간 본인이 서명한 것은 30여종이 있음) 그 서류를 보관해 놓습니다. 세 번째로 안기부를 배신할 경우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된다는 미소의 위협을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국내에서 안기부의 비인간적인 면들을 폭로했을 경우 현재처럼 양심적인 진보언론들은 저의 말을 믿고 보도하겠지만 보수언론들은 예전에도 해 왔듯이 보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씨 남매 무죄입증 위해 입국 각오

또한 저는 언젠가는 안기부 손에 잡혀 국가모독죄와 공갈죄 같은 것들을 적용시켜서 수많은 범죄자의 한사람같이 만들어 구속시킬 것입니다. 이러한 거짓들을 보수언론들이 앞 다투며 떠들게 될 것입니다.(그렇지만 김삼석, 은주 씨의 무죄를 위해 제가 국내에서 할 일이 있다면 공항에서 안기부에 잡혀가는 일이 생긴다해도 들어오라면 들어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형을 다 살고 안기부의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갈 수도 있습니다. 배신하면 죽음밖에 없다는 게 안기부의 법입니다. 올 초에 저의 가장 친한 친구(장윤봉)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안기부원을 만나고 난 후 3일 후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저희 남누리 영상 회원들과 그 친구가 있는 영안실에 갔었습니다. 의사 말에 의하면 두 세 번 차에 받쳤다 합니다. 경찰들이 수사에 들어갔지만 어떤 압력에 의해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나의 친구는 결혼한지 3년이 지나 임신5개월인 부인이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죽는다는 것이 두려워 독일까지 와서 안기부를 폭로한 것은 아닙니다. 국내에서 폭로하겠다고 결정한 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해외에 나오게 되어 이 기회를 이용하면 더 많은 장점으로 안기부를 폭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김삼석, 은주 씨의 간첩조작행위와 안기부의 비인간적인 면들을 구체적으로 폭로하여 계속적인 효력을 쟁취하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안기부는 다른 프락치들의 갈등을 막기 위해서라도,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처음으로 안기부의 간첩조작 과정을 폭로한 저의 양심선언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방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리듯이 김삼석 씨와 은주 씨의 무죄를 위하여 힘차게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양심선언과정에서 저의 사생활까지도 말씀드리지 못한 것을 사죄 올립니다.

1994년 11월 18일 백흥용(배인오) 올림."
문서정보
문서번호 hc00010696
생산일자 1994-11-24
생산처 인권하루소식
생산자
유형 도서간행물
형태 일반기사
분류1 인권하루소식
분류2
분류3
분류4
소장처
다운로드
페이스북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