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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만의 정권교체로 이른바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98년은 개혁과 인권 향상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어느 해보다 높았던 해였다. 하지만 인권대통령을 자임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IMF의 신자유주의적 처방을 충실히 이행했던 것은 98년 최대의 역설이었다. <인권하루소식>(이하 <소식>)은 ‘인권정책’들이 정권의 정당화를 위한 ‘장식물’에 불과함을 여지없이 폭로해나갔다.
벼랑끝 생존권, 고단한 민중의 삶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0%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인권대통령’의 발언은 민중들의 피땀어린 투쟁으로 최소한의 수준이나마 쟁취해온 사회권 수준을 대폭 후퇴시키는 전주곡이었다. 2월에 등장한 ‘정리해고’라는 악령은 전국을 떠돌며 4백만의 실업자를 양산해냈다. 결식아동과 노숙자의 증가, 임금 삭감과 체불 등으로 ‘경제위기 극복=민중의 빈곤화’가 철칙이 되는 사이, 상위 20%의 소득은 오히려 증가하는 어이없는 현실이 빚어졌다.
9월 만도기계에 대한 경찰력 투입, 생계형 노점상 집중 단속, 부당노동행위와 철거폭력의 방치 등은 ‘국민의 정부’의 본질을 드러낸 대표적 사건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소식>은 노동현장과 거리를 누비며 ‘노동 생존권의 보장이야말로 인권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분주히 알려냈다.
양심에 대한 억압 지속
98년은 양심수 출신 대통령도 정권과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는 양심에 대한 탄압을 결코 포기할 수 없음을 입증해준 한해이기도 했다. 두 차례에 걸친 특별사면의 뚜껑이 열리자 인권단체들과 양심수 가족들의 기대는 분노로 바뀌었다. 세계 최장기수였던 우용각씨(41년째 구금)를 비롯한 양심수들에게는 ‘체제전복 위험세력’이란 구시대의 낙인이 부여됐고, 특히 8 15 특사에서는 신(新) 사상전향제도인 ‘준법서약제’를 도입하여 455명의 양심수 중 94명만을 선별 석방했다.
국민의 80%가 국가보안법의 개정 폐지를 지지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국가보안법은 그해 구속된 양심수 679명 가운데 55%를 잡아넣는 ‘실적’을 거뒀다. 꼬리를 문 각종 조직사건 가운데 특히 7월의 ‘영남위원회’ 사건은 울산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 저지투쟁이 최고조에 달하고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앞둔 시점에서 갑작스레 터져나왔다. 국가보안법이 신자유주의에 맞선 민중들의 투쟁을 제압하는 강력한 무기임을 가르쳐주었다. <소식>은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특집기사를 10회에 걸쳐 게재하는 한편, 준법서약제의 본질과 각종 조직사건의 배경을 파헤치며 양심을 수호하고자 했다.
음지를 뚫고 세상에 나온 양지마을
7월 인권단체들의 긴급현장조사로 드러난 양지마을 사건은 사회복지시설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소식>은 ‘육지위의 노예선, 양지마을’이란 특집기사를 통해 각종 인권유린 실태를 폭로하는 한편, 관련자의 처벌 등 사후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데 앞장섰다. ‘대도’ 조세형씨의 법정 진술로 드러난 청송교도소의 만행 등 전국 교도소에서 벌어진 각종 사망사건과 가혹행위, 출소자들의 법정투쟁 소식을 알려내는 것도 <소식>의 몫이었다.
산적한 인권과제들 그대로
2월 10일 서울대 ‘우조교‘ 사건의 대법원 승소판결, 2월 JSA에서 발생한 김훈중위 의문사 사건에 대한 대규모 진상조사단 설치, ‘불법검문 불복종운동’의 확산 등은 분명 의미있는 진전이었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 50주년 기념일인 12월 10일에 발족할 예정이었던 국가인권위원회가 법무부의 국가인권위 장악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인권법’ 시안(9월 발표)으로 설립이 무산되는 등 ‘국민의 정부’는 산적한 인권과제들을 그대로 남긴 채 해를 넘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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