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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김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사회 각계는 이 큰 두 가지 배경과 국민의 기대를 개혁의 호기로 삼을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호기’는 인권의 ‘참패’로 끝났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청산해야 했던 노근리 학살이나 매향리나 소파협상은 ‘유감’이란 상투어로 뚜껑을 닫았고, ‘의사폐업’으로 대표되는 사회 경제적 파워집단에게 짓밟힌 공권력의 자존심은 여성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호텔롯데 노조 파업에 대한 폭력에 달려들었다. 군산 화재사건으로 1평 남짓한 쪽방의 쇠창살 속에서 생을 마감한 윤락여성들의 비참한 죽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이후 오히려 생활고가 악화되면서 비관 자살한 장애인들의 죽음이 이어지는 등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와 그들의 목소리는 새천년을 맞아서도 처연하기만 했다.
매향리의 함성, 오만한 미국
1월 5일 파주미군기지 폭발물 설치 첩보를 접한 미군은 자신들만 대피하고 7시간 후에야 한국군에 그 사실을 통보했다. 꼬리를 문 주한미군의 범죄와 인권침해 행각의 시동이었다. 오 폐수와 포르말린 무단 방류 등 미군의 환경범죄가 잇따라 발각되었고, 매카시 상병의 한국여성 살해사건 등 범죄가 이어졌다. 특히 전국적으로 매향리 쿠니 사격장에 쏠린 관심은 인간띠 잇기, 맨몸으로 사격장 점거하기, 주민 장례식과 주민증 반납 등 지속적인 투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소파협상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일련의 사건에 대한 미국의 사과와 피해보상도 없었다.
공권력의 자존심?
의약분업 실시에 반발해 6월 20일부터 시작된 ‘의사폐업’이란 초유의 사태는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정부는 의보수가 인상 뒤 그 손실분을 의료보험료 인상을 통해 해결하기로 해 치료도 받지 못한 국민들에게 오히려 부담을 지웠다. 이처럼 파워집단에는 무력하기만 했던 정부가 표적으로 삼은 건 결국 생존권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였다. 6월 29일 새벽 4시 호텔롯데 파업 경찰특공대 투입, 7월 1일 사회보험노조 강제진압은 경찰폭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여 공권력의 자존심(?)을 세웠다.
홍석천 커밍아웃
9월말 언론에 의해 동성애자로 폭로되어 방송출연 중지를 당한 홍석천 씨는 “인간다운 삶을 선택하고자” 당당하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각계 인사들로 구성된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이 결성되었고, 홍 씨의 사건은 동성애자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을 ‘소수자의 인권문제’로 부각시킨 계기가 되었다.
가라 국가보안법, 오라 국가인권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국보법 개폐논의는 총리와 민주당 대표의 ‘연내 개정 방침’ 천명과 여야 의원 21명의 국보법 폐지법안의 공동발의로 박차를 가했다. 이런 호기를 놓치지 말고 구시대의 유물을 청산하라는 각계의 행동이 이어졌다. 그러나 ‘민주당은 조선노동당 2중대’라는 발언으로 시작된 수구세력의 반격과 민주당의 눈치보기는 국보법 개폐를 위한 어떤 행동으로도 이어지지 않았다. 또한 여야의원 95명이 공동 발의한 ‘독립적인 국가인권기구안’도 정쟁에 몰입한 정치권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결국 12월 28일 인권활동가들은 혹한기 노상단식농성에 나선다. 그것은 ‘인권대통령에 대한 최후통첩’이었다. 연말연시, ‘가라 국보법, 오라 국가인권위’의 구호는 눈발 속에 묻히고 개혁의 호기였던 2000년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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