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탄원서 의경 재복무 불가에 대한 건
내용
"수신 : 인천시 경찰청장
참조 : 인천시경 제 5 기동대장 
내용 : 재복무 불가에 대한 건

가. 탄원 요지(전략)
 
나. 탄원 내용 

1. (전략)

2. 의경을 시위진압에 동원하기 시작한 것은 전경으로만 구성되어있던 시위진압 기동대가 의경으로 대체되면서부터이다. 88년 국회의 국정감사에서 당시 이춘구 내무부장관, 조종석 치안본부장, 89년 김우현 치안본부장, 91년 이상언 내무부장관 등이 '대간첩 임무의 수행을 위한 전경을 시위진압에 동원하는 것이 불법'임을 공식 시인한 이래 전경의 시위진압 기동대는 대부분 의경으로 대체되어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의경의 시위진압 동원은 사실상 의장의 고유업무였던 '치안업무 보조'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그동안 시위진압 동원에 대한 의경 내부의 불만고조와 지원자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있다. 

3. 그러나 의경의 시위진압동원은 의경의 임무로 되어 있는 순수한 의미의 치안업무보조가 아니다. 의경의 '치안업무 보조'는 말 그대로 군병력의 일부가 합법적인 경찰구조의 틀 내에 들어와 경찰의 임무를 '보조'하는 준 군사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즉 의경의 치안업무 보조는 그 자체의 규정에 의하면 '국가시설의 방호 및 경비업무, 그리고 기타 긴급사태에 대한 명령지시 사항준수'로서 단순한 경찰의 업무나 시위진압의 작전개념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의경의 업무는 중요한 국가시설의 일반적인 상황의 경계, 경비와 전시, 사변, 천재지변 등 특수상황에서의 업무만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4. 따라서 88년 이후 의경을 시위진압에 적극 동원하고 있는 것 또한 불법이며 이러한 사실은 전투경찰 제도가 그 출범 초기부터 특정 정권의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불법적으로 대국민 탄압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5. 6.(전략) 

7.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헌법상의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군에 입대해야만 하는 젊은이들을 국방의 의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전투경찰로 전임시켜 시위진압에 동원하는 것은 명백히 헌법(제10조의 행복 추구권, 제11조, 제1항의 평등권, 제19조가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와 제39조 제2항에 의하여 보장되는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할 권리 등등)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8.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투경찰(전, 의경)은 국방의 의무가 아니다. 그 출생에서부터 기형아로 태어나 불법적으로 생명을 유지해온 전투경찰을 국민들의 민주적 요구와 권리를 폭력으로 탄압하고 있는 독재정권의 사병조직일 뿐이다. 즉 전투경찰은 대국민 전투를 일상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기형아적인 국가조직인 것이다. 문민시대를 맞이하여 국가보안법 못지 않게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전투경찰(전, 의경)은 하루빨리 해체되어야 한다.

9. 본인은 의경으로서 복무하던 당시 포장마차 철거령에 의해 시위진압에 동원된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철거를 반대하는 시위는 없었다. 단지 생존을 위한 철거민들의 몸부림만이 있었을 뿐인데도 우리는 진압명령에 의해 그들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했다. 본인은 기독교인으로서 이러한 비인간적인 상황과 어찌할 수 없는 본인의 형편상 그 자리에서 방패를 든 채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최소한의 양심적 눈물마저도 용납되지 않았다. 상황이 끝나고 부대로 복귀했을 때 본인은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만으로 고참들로부터 무수한 구타와 기합을 받아야했다.

10. 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였을 때에도 그들의 정당한 요구를 명령에 의해 진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본인은 수많은 갈등과 양심의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본인에게 주어진 이러한 임무에 대해 회의할 수밖에 없었으며 본인의 행동 또한 어떠한 이유에서 간에 정당화될 수 없었다.

11. (전략)

12. 이러한 현실을 직접 경험하면서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인가'라고 수없이 반문해 보았으며 지금까지 본인이 알고 있는 민주주의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현실이 실로 안타까웠다. 이에 본인은 더 이상의 의경 생활을 참고 견딜 수가 없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다. 본인의 일 이차 부대이탈은 이 잘못된 현실을 향한 최소한의 몸부림이었다.

13. 본인은 두 번에 걸친, 도합 2년 5개월간의 수형생활에서 의경생활에 비유할 수 없는 양심의 자유와 정신적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본인의 행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전투경찰의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행동의 팰요성을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의경에 자원입대하고 있다. 본인의 고통을 이들이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의경의 시위진압과 부대 내에서의 비인간적인 행위들이 사라지기를 기독교인의 양심으로 기도한다. 

14. 이상의 이유에서 본인은 전투경찰로서 재복무할 수가 없다. 잘못된 현실에서 본인이 피해받은 고통에 대한 보상은 차치하더라도 본인에게 다시 재복무를 강요한다든지, 복귀하지 않을 경우 다시 탈영 처리하여 법의 처벌을 또 받게 하겠다는 발상을 본인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본인은 과거 잘못되었던 군사정권의 피해자로서 현재 남아 있다. 본인의 상처가 다 치유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본인은 다시 그러한 상처를 강요받을 수가 없다. 


1993년 8월 25일 
탄원인 김대영 
소속 인천시경 제5기동대"
문서정보
문서번호 hc00011068
생산일자 1993-09-03
생산처 인권하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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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도서간행물
형태 일반기사
분류1 인권하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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