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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내 가혹행위가 한 이등병을 투신자살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밝혀냈다.
24일 인권위는 2001년 2월 신병 위로휴가를 나온 뒤 집 근처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이모 이병(사망 당시 22세) 사건과 관련, 국방부장관에 이 이병에 대한 가혹행위를 한 혐의가 있는 지휘관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는 한편, 대책 마련을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군 의문사와 관련해 인권위가 결정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인권위 결정은 이 이병의 아버지(53세)가 2001년 11월 진정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애초 육군본부에서는 이 이병의 사망을 '자해자살'로 판정했으나, 이 이병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이 군내 가혹행위에서 비롯됐다고 판단,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0년 10월 육군에 입대, 같은 해 12월 육군 모부대에 배석된 이 이병은 이듬해 2월 16일 자살하기까지 군내에서 선임병과 지휘관으로부터 각종 가혹행위에 시달려왔다. 이 이병은 복장준비가 늦다는 이유로 선임병에게 전투화를 신은 발로 복부를 폭행당한 바 있고, 휴가를 나오기 불과 며칠 전에는 또 다른 선임병에게 머리를 2회 구타당하기도 했다. 더구나 이 사건과 관련 당시 작전장교였던 윤모 소령은 이 이병에게 폭행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진술서 작성을 강요, 이 이병이 이를 거부하자 군용차량 폐타이어(무게 26Kg)를 목에 씌운 채 두 시간 동안 연병장을 돌게 하기도 했다.
이러한 훈육의 한계를 넘어선 지휘관의 과도한 기합과 선임병의 따돌림이 이 이병에게 견디기 어려운 절망감을 느끼도록 만들어 끝내 자살이라는 비극을 낳았다는 것이 인권위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국방부장관에게 윤모 소령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고, △병영생활 부적응자의 적응력을 높이고 각종 사고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방안 마련 △군 사망사고 처리의 객관성 공정성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방안 마련 등을 권고키로 했다.
""범죄사실 밝히고도 왜 고발 안하나""
이번 인권위 결정에 대해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군폭력 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군가협) 조종오 회장은 ""군 수사기관에서 밝혀내지 못한 사실을 인권위가 밝혀낸 것은 의미 있다""면서도 ""인권위가 범죄행위 사실을 밝혀냈으면서도 가해자를 직접 고발하지 않고 단지 수사만 의뢰한 것은 상당히 미흡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공정성이 의심되는 군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한다고 해서 제대로 진실이 밝혀질 수 있겠는가 하는 지적인 것이다. 반면, 인권위가 가해자를 직접 군 참모총장이나 국방부장관에게 고발할 경우, 이들 기관은 3개월 이내에 수사를 종료하고 결과를 위원회에 통보해야 하기 때문에 좀더 공정하고 실효성 있는 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
조 회장은 또 ""국방부장관에게 낸 제도 개선 권고 역시 구체적이지 못하고 일반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성역화된 군대 내에서 발생한 억울한 죽음들의 진실을 규명하고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군 사법제도의 개선과 독립적 조사기구의 설치 등 좀더 구체적인 대안을 인권위가 제시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향후 인권위가 국방부장관에게 전달하게 될 의견서에 좀더 구체적 대안이 포함될지는 미지수다.
이 사건이 진정된 지 무려 1년 반이 지나서야 인권위 결정이 나온 것도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비슷한 시기 인권위에 진정된 40여건의 군의문사 유가족들은 인권위의 빠른 결정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만, 인권위는 조사관 수 부족으로 이들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도 착수하지 못한 실정이다.
한편 96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군 사망사건은 총 877건, 이 중 자살로 처리된 사건은 380건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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