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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4월 1일 밤 당시 강원도 화천 휴전선 방어를 담당하던 7사단 3연대 1 대대 3중대에서는 '죽음의 술자리'가 벌어졌다.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던 술자리에서 하사관 1명이 중대장과의 말다툼 끝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주위 사병들에게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중대장 전령이던 허원근 일 병을 발견, 탄창이 삽입된 총으로 행패를 부리다 허 일병의 오른쪽 가슴에 총을 발사했다. 우발적인 총격으로 허 일병은 그날 새벽 2∼4시경 사망했다.
같은 날 아침 대대 간부가 현장을 확인한 후 중대장 등과 대책을 논의해 본 격적인 사건조작에 들어갔다. 내무반 물청소가 진행됐고, 허 일병의 사체는 폐 유류고 울타리 주변으로 옮겨졌다. 이후 중대장은 아침 9∼10시경 중대 본부 요원 1명과 철책 순찰을 나갔고, 10∼11시경에는 누군가가 이미 죽은 허 일병의 왼쪽 가슴과 머리에 각각 1발씩을 쐈다. 그리고 낮 1시20분경 점 심 식사를 위해 이동 중이던 중대본부 요원들에 의해 허 일병의 사체를 발 견했다고 신고됐다.""
20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 아래 의문사위)는 진정 제32호 허원근 사건 관련, 당시 허원근 씨의 타살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사건발생 직후 수사에 착수했던 7사단 헌병대의 자살결론을 18년만에 뒤집는 것이다. 당시 7사단 헌병대는 '중대장의 이상성격에 의한 혹사로 비관, 중대장이 철 책 근무 순찰 나가는 시간을 틈타 탄창과 M16을 휴대하고 내무반을 빠져나 가 남방 약 50m 떨어진 폐 유류고에 도착한 후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을 발사해 자살한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의문사위는 그 동안 소속 부대 간부와 사병 및 헌병대·보안대 관련자 등 2 백여 명을 조사했다. 하지만 의문사위의 초기 조사과정에서 사건 현장을 목 격한 간부와 사병들은 한사코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당시 허원 근 사건이 상급부대에 보고되는 과정에서 간부의 이야기를 옆에서 전해들은 사병의 진술을 근거로 타살의 단서를 잡았다. 이를 근거로 외곽에서부터 사 건현장으로 접근해 들어갔고, 결국 사건현장에 있던 장교와 사병들은 하나 하나 입을 열었다. 그 중 일부가 결정적 진술을 해, 의문사위는 허원근 사건 이 타살임을 확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허원근 사건의 경우, △자살 동기가 뚜렷하지 않고 유서도 남기지 않 은 점 △자살을 하기 위해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 총을 쐈다는 점 △당시 총성은 2발 밖에 들리지 않았다는 사병의 귀띔 등 처음부터 무수히 많은 의 문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84년 7사단 헌병대 수사결과 자살로 내려진 결 론은 같은 해 2군단 헌병대 수사와 육군 범죄수사단 재조사에서도 번복되지 않았다. 또 96년에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국방부에 재조사를 권고했으나, 국방부는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왔다.
의문사위 황인성 사무국장은 이번 발표에 대해 ""허원근 사건은 군 내부 의 문사 사건의 전형""이라며, ""조직적으로 은폐된 의문의 죽음을 밝혀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래군 조사3과장은 ""현장에 있던 사병들은 은폐과정에서 공범관계를 형성했다""라며, ""이후 헌병대의 수 사와 재조사 과정은 이들이 말을 못하게 막는 과정으로 작용했다""라고 덧붙 였다.
이날 의문사위는 허원근 사건에 대한 조사를 종결하지 않고 중간 발표 형식 을 취했다. 허원근 씨가 타살임은 확인됐으나, 타살이 자살로 은폐된 경위를 계속 조사하기 위함이다. 누가 허원근 씨의 사체를 운반해 총을 2발 더 쐈 는지, 사건의 조작·은폐를 지시하거나 묵인한 책임자는 어느 선까지 올라 가는지 등에 대해 의문사위는 보다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싶어한다. 하지 만 조사기간이 다음달 16일로 종료되는 현 시점에서, 의문사위는 앞으로 밝 혀야 할 의문의 무게에 초조한 형편이다.
한편, 허원근 씨의 유골을 지금까지 땅에 묻지 않고 있는 아버지 허영춘 씨 는 ""새벽에 죽은 아들을 아침 10시까지 방치했다가 다시 2발을 쐈다는 사실 이 제일 가슴 아프다""라며, ""하지만 그네들이 진실을 말한다면 '군 문제를 개혁하기 위해 나선다'는 조건에서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는 단지 아들의 한을 풀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러한 일들이 더 이상 재 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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