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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제3소위원회(차별진정 담당)가 경제자유구역법의 인권침해에 관한 진정을 끝내 각하시키고 제1소위원회(정책 담당)로 이관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인권위의 사회권 보호 의지를 크게 의심케 하고 있다.
제3소위는 지난 5월 26일 '경제자유구역 폐기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경제자유구역법의 인권침해 요소와 관련해 제기한 진정사건에 대해 3개월을 넘긴 지난 9월 1일 각하 결정을 내렸다. 더구나 대책위가 각하 결정문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약 3주 뒤.
제3소위는 각하 사유로 입법 영역을 진정 조사대상에서 제외한 인권위법 규정을 들고 있다. 경제자유구역법에 대한 진정은 애초부터 제3소위의 조사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 이 해명대로라면 결국 제3소위는 진정이 형식적인 요건을 충족시키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만 무려 3개월을 허비한 셈이다.
그러나 제3소위의 더 큰 잘못은 진정사건이 중대한 인권침해를 야기하는 법·제도와 관련돼 있을 경우, 법·제도 개선권고를 소관업무로 하는 제1소위로 해당 사안을 이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데 있다.
아까운 시간 허비하고 각하만 결정
경제자유구역법이 무엇인가? △파견노동 확대 △단체행동권 제약 △장애인 의무고용 면제 △영리목적의 외국인 교육기관과 의료기관 설립 자유화 등 이 법에 규정된 온갖 독소조항들이 사회권 영역의 돌이킬 수 없는 후퇴를 야기할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이 중대한 인권 사안을 제1소위로 이관하지 않은 제3소위의 안일한 태도는 인권위의 사회권 보호 의지가 얼마나 빈약한 수준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에 대해 제3소위 유시춘 상임위원은 ""경제자유구역법에 의한 인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정책소위(제1소위)에서 논의할 사항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최종적으로 이관 결정을 하지는 않았다""는 무책임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 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권을 침해하는지도 분명치 않고 이 법이 잘 시행될 것 같지도 않았다""는 게 유 상임위원의 궁색한 해명이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과 관련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우울한 인권상황에 정작 눈을 감고 있는 곳은 인권위다. 제3소위가 결국엔 각하시킬 진정 처리에 늑장을 부리고 있을 동안,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인천은 초국적기업에게는 투기의 천국으로, 노동자에게는 언제 실업자로 전락할지 모를 위협 속에서 고통스런 노동조건을 감내해야 할 지옥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또 최근 정부는 '외국교육기관 설립·운영에 대한 특별법'을 만들겠다며 공교육 포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경제자유구역 재앙에 왜 눈감나
경제자유구역법에 대한 인권위의 안일한 대응은 상임위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임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 직전, 이 법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표명을 구하는 인권사회단체들의 '정책 진정'에 대해 '의견표명 보류'를 결정한 바 있다.
유 상임위원은 ""경제자유구역법의 국회 통과가 여야합의로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국가인권위의 의견표명으로 그 결과가 뒤집힐 것 같지 않았고, 더구나 노동계에서 강력하게 문제제기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며 당시 상임위원회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결국 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 입안·이행 시 인권적 관점에서 해당 정책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야 할 인권위 본연의 권한과 책무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인권위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기는 아직 이르다. 지난 7일 인권단체들이 경제자유구역법에 대한 '정책 진정'을 제출하자, 인권위 정책국이 이 법의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보고서를 제1소위에 제출하기로 결정한 것. 정책국이 보고서를 제출하면 제1소위가 정책권고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되는 만큼, 앞으로 제1소위의 행보가 주목된다.
제1소위의 판단은 인권위의 사회권 보호 의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경제자유구역법뿐 아니라 자본의 세계화 속에서 가난한 약자들의 인권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무역·투자 자유화 경제정책들을 향해 이제 인권위가 입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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