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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큰 죄가 될 줄 몰랐습니다"" 언론이 선두에 서고 '국민들'이 배후에 서 '수능부정 학생들'에 대해 뭇매질을 하는 동안 당사자 학생들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마치 대학을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인생의 낙오자인양 호들갑을 떨던 사회가 이제는 '수능부정 학생 죽이기'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일선 교육 현장에 있는 한 교사는 ""입만 열면 경쟁을 외치고,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도 '괜찮아'를 반복하며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아이들을 몰아왔다""고 고백하며 ""아이들에게 돌을 던지지 말고 모두 이 못난 선생에게 돌을 던지라""고 '반성문'을 썼다. 어쩌면 '수능부정 학생들'은 로또 광고문구처럼 '인생역전'의 신화를 꿈꾸며 '수능부정'을 감행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수능도 로또도 한 번의 대박으로 '성공'의 계단을 오를 수 없음을 보여줬다.
우리사회는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철저하게 주입해 왔다. 학생들에게는 ""좋은 대학만 가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교육하고, 사회구성원들에게는 결과로서의 물질적 부만이 최고의 명예가 되고 있다.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발전 신화'를 신봉하는 어른들이 '사회 주류'에 서서 아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현실, 바로 결과만을 중시하며 '한탕주의'를 조장하는 어른들이 '수능부정'으로 이끌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현실에 책임이 있는 정부는 '부정학생'들의 구속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여론도 12명의 학생들이 구속됐지만 오히려 ""주동자 22명 중 12명만을 구속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부적절한 형평성 논리로 마녀사냥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구속'은 희생양만을 낳는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다.
부정을 저지른 아이들에게 '공정경쟁'은 '교과서'처럼 공허했을지도 모른다. 일부 학생들이 '불법적'으로 수능부정을 모의하고 있을 때 한편에서는 '합법적'으로 고액의 '족집게 과외'를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경쟁'은 이미 아이들에게 '불가능한 임무'이다. '아이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말하면서 어떻게 '국영수' 점수만을 기준으로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울 수 있단 말인가. 영어 100점 아이와 '춤짱' 아이가 어떻게 경쟁할 수 있을지.
안병영 교육부총리는 25일 사과문을 발표해 ""부정학생들을 꾸짖기만 할 수는 없다""며 ""그들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와 시험 점수 위주 교육의 희생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불행히도 학벌주의를 해결하기 위한 아무런 대안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낮은' 수능점수로는 이른바 '일류대'를 꿈꿀 수도 없고 이들이 또다시 청년실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심각성은 재차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악순환은 구조적인 것이지만 그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개인의 몫인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그 악순환의 원죄를 모두 '낮은 수능점수' 탓으로 돌리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로또 한 장에 '인생역전'을 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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