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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건강카드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병력(病歷)사항, 진료내역, 이름, 혈액형 등 각종 개인정보가 담긴 전자(혹은 자기) 카드를 실용화시킨다는 엄청난 계획이다. 이 사업은 과거 전자주민카드 계획과 맞먹는 인권침해 소지와 위험성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국회에 관련 법안이 상정되어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르면 6월 국회, 늦어도 9월 정기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킬 계획을 세우고, 벌써부터 사업자 선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전가건강카드 시행반대 사회단체 연대모임’은 지난 18일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낮 12시부터 2시까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인 시위’는 22일까지 진행된다.
전자건강카드가 상용화될 경우 예상되는 일들을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그려봤다. [편집자주]
시나리오 1.
영화배우 박영자 씨가 ‘연예활동 중단’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과거 성병(性病)에 걸렸던 사실이 한 연예잡지를 통해 폭로되면서 박 씨에겐 온갖 억측과 비난이 쏟아지던 터였다. 연예잡지사로 박 씨의 병력정보가 흘러 들어가게 된 결정적인 단서는 전자건강카드였다.
박 씨는 얼마전 자신의 전자건강카드를 분실한 일이 있으며, 그것을 입수한 한 해커가 전자건강카드를 통해 박 씨의 병력정보를 풀어내고, 이를 연예잡지사에 팔아넘겼던 것. 박 씨 사건을 계기로 연예인들 사이에선 전자건강카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시나리오 2.
경찰청이 경찰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 개개인의 각종 정보가 전산화되고 하나의 망으로 통합관리됨에 따라, 그동안 ‘발품’을 팔아 정보를 수집해왔던 인력들이 이젠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게 된까닭이다.
경찰 내부에까지 구조조정의 바람을 몰고 온 공신은 전자건강카드. 2002년부터 시행된 전자건강카드가 이제는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을 제치고 가장 광범위한 국가신분증으로 자리잡았으며, 각종 관공서나 대중교통 이용에도 사용됨에 따라, 국민 개개인의 활동을 전산조회만으로도 확인하기 쉬워진 결과다. 구조조정 앞에 직면한 현직 정보과 형사들 사이에선 살아남기 위한 ‘전산학습’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시나리오 3.
건망증이 있는 회사원 김경태 씨는 오늘 또 회사에 지각했다. 회사출입증을 집에 두고 출근한 탓에 다시 집까지 되돌아간 일이 이번 달 들어서만 다섯 번째다. 전자건강카드의 지문을 확인하기 위한 단말기가 전국의 병 의원으로 보급된 이래, 사회 곳곳에 전자지문 감식시스템이 들어서더니, 김 씨의 회사도 얼마 전 직원 출근부를 전자지문감식장치로 교체했다. 김 씨는 “건망증을 탓해야 할 지, 전자카드를 탓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담배만 연신 피워댔다.
시나리오 4.
지섭이의 일기. “… 나는 오늘 또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다. 병원에 갔다오다가 전자건강카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게 공짜로 발급하는 건 줄 아냐’며 돈타령을 하셨고, ‘카드발급받을 때까진 아프지도 마라’며 마구 화를 내셨다. 엄마는 또 ‘정부가 맨날 국민 호주머니만 턴다’고 혼잣말을 하셨다. 카드 하나 때문에 하루종일 기분이 우울했다.”
시나리오 5.
오늘 하루 병원전산망이 마비되면서 환자들이 심한 불편을 겪었다. 전산망의 마비와 동시에 전자건강카드 사용이 불가능해지면서, 진료를 받지 못하거나 장시간 처방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속출했던 것. 환자 이미영씨는 “환자들에겐 1분이 하루와 맞먹는 시간”이라며 당국의 안이한 대처를 비난했다. 2002년 전자건강카드가 시행된 이래, 전산망 장애에 따른 병원대란은 이번이 세 번째다.
시나리오 6.
삼대SDI와 현성카드의 주가는 어디까지 치솟을까? 2001년 전자건강카드 사업권을 따낸 두 회사가 주식시장의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전자건강카드에 신용카드기능이 부가된 결과, 가장 큰 수혜를 입게 된 현성카드는 연간 4천억원 이상의 순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전자지문감식단말기 보급과 각종 전산시스템 구축사업을 맡은 삼대SDI 역시 매년 엄청난 매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차기 전경련 회장은 두 회사 가운데 한 쪽에서 나올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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