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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1년 정도 앞둔 96년 10월 14일 정부는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보화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정보민주주의'와 '보편적 서비스' 개념을 포함한 내용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발표가 있은 지 불과 몇 달 후, 12월 26일 안기부법과 노동악법이 날치기 통과되었으며, 97년 1월 11일에는 '통신 보안법'(전기통신사업법 53조 시행령 16조)이 발표되었다. 이번에 개정될 시행령은 수사기관이 사법부의 영장 없이 자의적으로 통신권 제한조치 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인 통신권 박탈까지 가능하게 하고 있다. 또한 세계 최초의 통신검열기구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윤리위)의 존재 자체의 위헌성에도 불구하고 더욱 강화된 사전 검열과 사후 통제를 가능케 하고 있다. 통제와 감시의 강화! 이것이 정부가 원하는 정보화이고 민주주의인 것인가?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통신권 제한과 박탈에 관한 정보통신부장관의 위상과 역할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궤변일 뿐이다. 지금까지 통신제한조치는 수사기관의 요청에 의해 정보통신부장관의 형식적인 명령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미 지난 2년 동안 1천 2백72건의 안기부 감청을 포함한 4천여 건의 전화감청과 15만6백여 건의 우편검열이 자행된 사실을 뒤로하고라도, 작년 한해 동안만 통신상에서 '단지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선거법 관련 18명, 보안법 관련되어 33명이 수사 혹은 구속수사를 당했으며, 비밀이 보장되어야 하는 대화방에서의 대화 내용이 검찰의 증거자료로 등장하는가 하면, CUG(폐쇄동호회)까지도 표현상의 이유로 폐쇄해 버렸다. 그러므로 이번 개정안은 수사기관에게 암암리에 자행된 국민의 통신기본권 침해를 뻔뻔스럽게도 공개적으로 자행할 수 있게 하였으며, 윤리위에게는 명실상부 국민의 발언을 통제하는 정부에 검열기구로 자리잡게 했다.
2년새 전화감청 4천건 우편검열 15만6백건
개정안 시행에 따라 예상되는 결과는 참혹하다. 사회단체의 CUG 폐쇄와 전화, 통신의 중단조치는 수사기관 혹은 윤리위원회의 '감정개입'으로 언제든지 이루어질 수 있으며, 사회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통신공간상의 동호회와 개인은 언제든지 폐쇄 또는 통신의 권리를 박탈될 수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는 더욱 위축되고 사회의 의식있는 목소리들은 사라지게 되어 통신공간은 황폐한 사막과 같이 될 것이다.
이제 명확해졌다. 96년 10월 14일 정부가 발표한 '정보민주주의'와 '보편적 서비스'의 수혜 주체는 '수사기관과 윤리위'였으며, 국민들에게는 통제와 감시, 그리고 통신제한과 박탈만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통신공간은 상품판매와 정부의 홍보공간으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이할 날만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예로부터 입법·사법·행정의 분리가 엄격한 국가를 '민주주의' 국가라 칭해 왔다. 특히 국민들의 기본권에 관한 사안은 입법, 사법, 행정부에서의 견제와 통제 이후에 엄격하게 내려져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번 개정안은 수사기관과 검열기구인 윤리위에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할 수 있는 초헌법적, 반민주적인 권한을 부여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 나라가 진정으로 민주주의이기를 원한다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이번 개정안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김영식(정보통신검열 철폐를 위한 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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