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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수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수십명의 정치적 수인들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알려졌으나,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한명의 양심수를 포함하여 여러 정치적 수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여전히 많은 범죄에 대해 사형이 선고되고 있다.
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북한 전역은 애도의 분위기가 가득 찼으며, 남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취소되었다. 정상회담의 주요내용은 지난 6월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이견을 해소하기 위해 개최되었던 북미 협상에서 동의된 것이었다. 10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수정하고 또 필요한 에너지 일부를 지원하기 위한 국제적인 재정원조 등 이 문제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사망 때까지 김일성 주석이 장악하고 있던 주석직과 집권 노동당의 총서기장직은 94년 말까지 공석으로 비어 있었다. 그러나 북한 인민군의 총사령관이며 노동당 상임위원회 위원인 그의 아들 김정일이 김일성 사후 주요 지도자로써 자주 언론에 언급되었다.
수백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정치범들이 미확인 구금소에 수용되어 있다. 이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구금 이유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일부 정치범들과 양심수일 것으로 추정되는 수인들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있었으나 대부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기술자인 김덕환 씨는 61년말 혹은 62년 초에 평양에서 북쪽으로 약 1백km 떨어진 곳인 신양 지방에 구금되었는데, 구금의 배경은 그가 53년에서 57년까지 소련에서 유학하였고 소련인과 결혼했다는 것이다. 그의 구금은 60년대 초, 소련과 북한의 관계 악화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소련에 있는 그의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그의 소식을 들은 것은 66년이다. 국제앰네스티는 그가 지금까지 구금되어 있다면 양심수라고 확신한다.
경우에 따라 수십년동안 재판 없이 구금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수십명의 정치적 수인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있었다. 이들은 평양의 동쪽에 있는 승호리 수용소에 구금되어 있었다.
이들 중에는 60년대 이후 소식이 끊긴 역사학자인 리라영 씨와 이전에 일본에서 살았던 재일동포 20명 이상이 포함되어 있다. 미확인 보도에 의하면 수인들이 이감된 후 승호리 수용소는 폐쇄되었다고 한다.
94년 6월, 북한당국은 60년에 북한에 재정착한 일본인 시바타 고조 씨가 64년 간첩혐의로 김호남이라는 한국명으로 20년형을 선고받은 후 구금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국제앰네스티는 그가 양심수라고 생각한다(국제앰네스티 보고서 1994 참조)
북한 당국은 그가 반국가 음모를 도모하기 위해 다른 수인들을 선동하였다는 혐의로 재판에서 6년의 추가형을 선고받았으며, 석방된지 3개월 후인 90년 3월에 가족과 함께 기차사고로 사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당국의 공식적인 주장은 국제앰네스티가 알고 있는 정보와 일치하지 않으며, 비공식 정보에 의하면 시바타 고조 씨는 자신이 왜 6년형을 더 선고받았는지 그 이유를 몰랐으며 공식적인 재판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북한 당국은 알려진 다른 정치적 수인들에 관한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였다. 북한 당국은 남편이 왜 해외로 정치적 망명을 한 후, 87년에 구금된 것으로 알려진 신숙자 씨와 두 딸이 구금되지 않았으며 수도인 평양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국제앰네스티는 2년 동안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
사형제도는 일련의 정치적 범죄들에 대해 의무적으로 확실한 폭력 범죄들에 대해 선택적인 처벌방법으로 형법에 규정되어 있다. 이전 여러 해 동안 사형집행이 매년 이루어졌고 일부는 공개집행 되었다는 비공식 보고가 있지만, 사형집행이 공식적으로 보고된 적은 한번도 없다.
8월에 국제앰네스티에 전달된 한 공식적인 정보에 의하면, 최근 몇년동안 92년 살인죄로 체포된 사람을 포함해서 두 사람이 사형을 선고받은 후 집행되었다고 한다(국제앰네스티 보고서 1994 참조).
다른 알려진 사건들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없었다. 비공식 정보에 의하면, 밀수와 같은 경제범죄로 인해 체포된 사람들이 중국의 국경지역 근접한 곳에서 94년에 약식 집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국제앰네스티는 6월, ""북한: 정치적 수인에 관한 새로운 정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는 두명의 알려진 정치적 수인들에 관해 자세히 기술하였고 49명의 명단이 수록되었다. 9월 국제앰네스티는 북한에 관한 또 다른 보고서를 발표하였으며, 이 보고서에서 국제앰네스티는 시바타 고조사건과 관련한 추가적인 정보를 자세히 기술하였다. 8월의 북한 대표자들과의 만남과 94년 동안 북한당국과의 서신교환 등을 통해, 국제앰네스티는 김덕환 씨를 비롯하여 여러 사건들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북한측에 요청하였으나 어떤 회답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국제앰네스티는 93년 10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언급된 수인들에 관한 부분적인 정보를 북한당국으로부터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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