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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권위주의 통치에서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공권력에 의하여 희생된 의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2000년 10월 17일 출범한 것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다. 그간 위원회가 과거의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걸어온 길은 자갈밭의 연속이었다. 의문사진상규명법안 자체의 한계, 국가기관들의 비협조, 위원회 내부의 진통, 조사권한의 강화 없는 표피적인 법개정 등이 그것이다.
한계 속에서나마 위원회는 최종길 교수,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 대한 진실 접근, 녹화사업의 증거 발굴 등 성과를 남겨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위원회가 지난 6월 최초로 진상규명한 고 박영두 씨 사건을 들 수 있다. 위원회는 84년 청송 제1보호감호소에서 의문사한 박영두 씨가 감호소 내 인권탄압에 항의하다 교도관들의 폭행으로 숨진 것이라 밝혔다. 5공 당시 발생한 의문사가 처음으로 국가기관에 의한 타살로 인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 것은 위원회가 왜 명백히 존재하는 가해자를 고발하지 않느냐이다. 박영두 사건의 가해자들은 현재 청송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등 공직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사죄의 뜻을 밝힌 적도 없거니와 오히려 '법대로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위원회는 진상규명 당시의 논의에서도 그랬고, 지난 주말 위원회 회의에서도 박영두 사건의 가해자를 고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법 제25조는
""위원회는 진정을 조사한 결과 진정의 내용이 사실임이 확인되고, 범죄혐의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검찰총장에게 고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욱 철저하게 하라는 비판과 요구에 직면해온 위원회가 취할 태도로서는 미지근하다 못해 책임 회피에 가까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은 위원회가 아닌 가해자를 비호하는 기관에서 나올 말이다. 국가기관에 의한 의문사치고 공소시효에 걸리지 않는 사안은 없다. 이 때문에 반인도적 국가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기 위한 운동이 진행되고, 일부 국회의원들도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위원회가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바로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녹화사업, 고문치사의 증거들이 한 모서리만 비쳐도, 억압의 역사 속에서 불려나온 희생자들의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원회에 국민의 촉각이 쏠리고 있다. 위원회의 역사적 무게를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최선을 다하라. 마땅히 할 일을 회피하거나 지레 결과를 짐작해 행동할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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