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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나는 수배된 학생이었다. 부천 원미동의 가게에 취업해서 두 달 동안 석유배달을 하다가 잡혔다. 양귀자가 쓴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무대가 된 바로 그 동네, 13평형 5층 주공아파트단지 건너편 석유가게에서 내가 두 달 동안 있었다. 내가 그렇게 숨어서 배달을 다니던 그때에…. 골목에서 중국음식점 철가방 소년을 만나면 즐거운 수다를 하기도 했던 그때에…. 한가할 때면 석유가게 옆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실컷 읽기도 했던 바로 그때에…. 나의 친구 김의기는 종로5가 기독교방송국의 8층 난간에서 아스팔트 위로 투신했다. 그가 뿌린 몇 장 안 되는 유인물의 제목은 간단했다.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뿐이었다. 광주에서는 수백 명의 시민이 죽고 있는데, 동포라는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뿐이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총칼을 군인들이 다시 국민의 가슴팍에 들이대고 있는데, 동포라는 당신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뿐이었다.
김의기의 장례식을 치렀던 선배가 몇 개월 후에 나를 만나서 말했다. ""똑똑하고 잘난 놈들은 다 숨어버리고, 멍청하고 바보 같은 놈들끼리 남아서 김의기 장례를 치렀다. 애새끼들이라고 얼마나 꼭꼭 숨어버렸는지, 김의기 관을 운구할 놈들이 없는 거야. 너는 임마 나쁜 놈이야."" 나는 아무 할 말이 없었다. 그것이 80년대 10년 동안 나의 가슴에 살아있던 화두였다. 나의 친구 김의기가 기독교방송국 8층 난간에서 아스팔트 도로 위로 몸을 날리는 동안,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 부채감이 80년대 10년 동안 나를 가위눌리게 했다.
그런데 이제 또 다른 부채감이 나를 가위눌리게 한다. 2000년 12월과 2001년 1월, 그 혹한의 겨울,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명동성당 길가에서 인권활동가들이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하는 동안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 사람들이 하얗게 얼음이 붙는 비닐을 덮고 길가에 누워있는 동안, 그들의 손발과 코끝이 동상으로 문드러지는 동안, 허기에 지친 사람들이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하는 동안,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나는 이번에도 또다시 그런 부채감으로 가위눌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라도 명동성당 들머리에 가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가지 못했다. 천만다행스럽게 이번에는 작은 변명거리라도 있다. 파업투쟁 2백일을 넘긴 이랜드 노동자들을 만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함께 울었오…. 당신들처럼 노숙투쟁을 하고 있는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진한 발코랑내에 내 몸을 묻었오. 그렇지만 그 알량한 핑계가 나를 해방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인권활동가들이 명동성당 길가에서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하는 동안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우리 모두 그 부채감으로부터 벗어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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