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논평> 테러방지법 한시법도 안된다
내용
"테러방지법안에 대한 거센 반발을 의식했는지, 정치권에서는 '국가정보원에 수사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라는 수정안을 내놓는 한편 월드컵대회 기간에만 적용되는 한시법으로 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일보 후퇴로 보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국정원에 설치되는 '대테러센터'의 수사지휘권을 검사에게 준다는 주장을 보자. 우리가 국정원이 주도하는 '대테러센터'에 반대했던 것은 정보기구가 '비밀경찰'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휘권이 검찰에 부여된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국정원에는 여전히 수사권이 남아 있게 되며, 그러한 권한은 정보권력과 합쳐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권한으로 행사될 것이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이다.

현실적으로 국정원 요원에 대한 검찰의 통제가 사법경찰관에 대한 통제와 같으리라 기대할 수 없고, 과거 안기부 전담 수사에 있어서 검찰은 거의 개입하지 못하고서 나중에 안기부 수사 내용을 발췌, 정리하여 공소장만을 대서해온 기능에 안존해온 것이 역사적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지휘권을 갖는다 해도 국정원 내 '대테러센터'가 수사업무를 담당함으로써 야기될 문제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찰과 정보기구의 권한 사이의 경계상실이 심각한 상황인데 여기에 테러방지법까지 만들어 상황을 악화시켜서는 결코 안된다. 

국정원이 지난 1961년 중앙정보부로 창설된 이래 안기부를 거치면서 줄곧 단순한 정보기관이 아닌 '음지의 권력기관'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가 무엇이던가? 국가정보기관으로선 이례적으로 정보수집권에 보안수사권까지 함께 가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권한을 남용하여 국내외 정보의 수집, 분석을 통한 국가중요정책결정의 방향제시라는 본래의 목적으로 떠나 국내정치에 개입함으로써 각종 불법을 자행하였고, 특히 그 조직과 활동의 비공개성과 결합하여 수사권을 남용해왔다. 

그 결과는 불법체포, 감금, 고문 등 가혹한 인권유린 행위의 자행이었다. 이에 구 안기부의 수사권을 분리하려던 시도가 있었으나 여러 차례 수포로 돌아간 것이 우리의 역사였다. 그러하기에 국정원의 기능을 순수한 정보기관으로 국한시키자는 것이 국민의 오랜 요망사항이었고, 현 정부가 안기부에서 국정원으로 개명한 이유였다. 국정원이 지금 갖고 있는 수사권한을 축소해도 모자랄 마당에 국정원에 '대테러센터'를 설치하게 하고 테러범죄에 대해 수사하게 하는 것은 시대를 거스르는 횡포이다. 검찰이 수사 지휘권을 갖는다고 해서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둘째, 월드컵 기간 동안의 '한시법'으로 하자는 주장에 대해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월드컵 안전대책 문제없다'던 정부의 장담은 듣기 좋은 선전문구였나? 기존의 월드컵 대책 법률과 대책반들은 무력한가? 원래 대책이라는 것이 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게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정부는 그간 월드컵을 위해 국민의 세금을 엄청나게 써대면서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못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런 무능함이 대회를 불과 6십여일 앞두고 뚝딱 법을 만들고 그 법으로 인해 국정원이 대테러센터를 가지기만 하면 해결되는가? 

무릇 법률은 '법적 안정성'을 추구해야 할 것인데 두 달 동안만 시행할 법률이 가져올 혼란은 클 것이다. 월드컵 기간 중에 테러를 기획했다가 한시법 규정이 끝나고 난 뒤 체포된 사람은 어떻게 처벌되는가? 월드컵 기간 동안에 대테러센터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수사한 테러범이나 테러조직을 기간이 끝나면 어디로 넘겨준다는 말인가? 

법을 두 달 동안만 시행하겠다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한번 만든 법을 그렇게 쉽게 폐기할 리가 없다. 우리 입법사에서 그런 예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지금은 일단 한시적이라고 얘기해놓고 법을 만든 후에는 '테러의 위험성이 상존하니 계속 필요하다'고 할 것이 뻔하다. 또한 테러방지법안의 모든 법조항을 한시법으로 하지도 않을 것이다. 특히 테러방지법안처럼 국정원의 권력확대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법을 한시적으로 쓸 생각이었다면 애초 기획했을리도 없다. 

이런 이유로 한시법이나 검찰의 수사지휘권 운운하는 것은 여론에 밀린 국정원과 정치권의 궁여지책이요, '테러방지법안을 결코 국정원에게 안겨줘서는 안된다'는 것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기만적인 술책에 불과하다. 테러방지법안을 폐기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
문서정보
문서번호 hc00001221
생산일자 2002-03-22
생산처 인권하루소식
생산자
유형 일반문서
형태 설문조사
분류1 인권하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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