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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생략) 별로 철이 없던 제가 9개월간의 전경생활을 하면서 아픔도 많이 느꼈고 많은 깨우침도 얻게 되었습니다. 밤새워 우리 사회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하던 벗들, 시위현장에서 그들은 돌을 들고나는 사과탄을 들고 맞서야 했습니다.
최소한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청계천의 노동자들을 닭장차에 실어서 서울 근교의 아무 곳에나 버리게 되었을 때 저를 쳐다보던 어린 여공의 핏발선 눈빛, 이른 새벽 서초동 철거민촌에 쳐들어갔을 때 판자집을 지키고자 울부짖던 아버님들과 어머님들, 그리고 어린 동생들의 원망스러운 눈빛.
저에게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던 이 땅의 아픔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전경이 되어서 이러한 일들을 하고 이러한 것들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와 같은 한 대학생이 죽었습니다.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사복체포조 백골단에게 맞아 죽었습니다. 마음 속에서는 너무도 많은 감정들이 복받쳐 올라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용기가 없어 그러한 현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용기를 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마감뉴스시간에 3명의 젊은이들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꿇어 않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 앞에는 쇠파이프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94중대의 동료들이었습니다. 가슴이 복받쳐 올라 왔습니다. ‘아 이렇게 되는구나. 노태우 정권을 지켜주느라고 밤낮 없이 돌을 맞고 화염병에 데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국민의 지탄을 받는 죄인이 되는구나. 살인자가 되는구나.’ 저는 미련 없이 양심선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경은 저의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그 반대로 전투경찰은 폐지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독재정권의 방패막이는 이제 더 이상 그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문민시대가 되었고, 문민정부가 들어섰다고 합니다. 제가 전투경찰의 해체를 바라는 것은 제가 겪었던 아픔과 눈물을 지금의 후배들에게 더 이상 물려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군사독재정권의 잔재가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있는 것을 봅니다. 수많은 양심수 외 장기수분들, 수배자 형제들, 교단으로 돌라가지 못하는 선생님들.
얼마 전 양심선언을 했던 군인동지들이 실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의 핵심은 군대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시절에 군의 민주화를 양심선언을 통해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런 그들이 군사독재정권과 다르다는 문민정부의 시대에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때 재판장은 최후진술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중지)
■ 판결요지(93. 10. 22. 수원지법 조건호 부장판사)
공소사실(전투경찰대 설치법 제9조 1항 군무시 이탈)이 인정되며, 피고는 본 법정에서 전투경찰대 설치법이 위헌이며 양심선언이 정당하다고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나, 그 운용에 문제점이 있다고 할 지라도 전투경찰대 설치법 자체가 위헌일 수는 없다. 또한 많은 전경들이 그 같은 조건 속에서도 개인의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하며 참고 생활하는데 유독 피고만 그러한 행위를 한 것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피고는 전경의 시위진압으로 학생들이 많이 부상당했다고는 하나 비록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어도 전경도 역시 많이 다치고 있다. 피고는 본 법정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행위를 영웅적이고 정당한 행위인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전투경찰대 설치법은 위헌일 수 없으며, 질서유지의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사려되는 바, 피고의 주장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피고에게 징역 1년 6월을 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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