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박영희의 인권이야기
내용
"수진 씨 눈에 눈물이 그렁하게 고였다. 
 
자동차 운전을 하기에는 팔의 힘이 약한 수진 씨의 유일한 이동수단은 전동휠체어이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거침없이 자동차에 대한 모든 것들을 고객 앞에서 당당하게 설명해내는 자동차 딜러(영업사원) 커리어우먼이다.
 
그녀가 자동차 딜러를 하겠다고 처음 대기업 자동차회사 문을 두드렸을 때, 그녀의 중증장애를 보고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었다. 딜러라는 직업이 빠른 기동성을 필요로 하는 것인데 어떻게 하겠느냐며 기회조차 주길 거부했다. 그러나 결국 그녀의 의지는 결실을 거둬 현대자동차 올림픽대리점 딜러가 될 수 있었고, 눈물과 노력으로 삼년을 일해온 보람으로 지금은 대리점에서 인정받는 딜러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 그렇게 어렵게 딜러로서의 전문성을 쌓아 이제 제대로 일해보려고 할 때, 수진 씨는 심각한 얼굴로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한다.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무엇보다 장애가 있는 엄마라는 이유로...
 
그녀에겐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1학년 아들 건이가 있다.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서, 엄마이면서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서 남들과는 달리 바쁜 24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하는 여성은 슈퍼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녀를 보면 실감할 수가 있다. 늘 마음이 바쁘게 퇴근하면서 시장에 들러 반찬을 사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며칠 전 수진 씨는 건이 짝궁 소현이를 만났다. 소현이는 ""아줌마가 건이 엄마세요? 몸이 불편하셔서 점심 급식에 못 오시는 거죠? 다른 애들 엄마들이 그랬어요""라며 건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를 말해주었단다. 소현이는 개구쟁이 건이가 친구들과 바닥을 구르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옷에 흙도 묻히고, 코도 흘리는 것 때문에 너무 속상하다고 자기 엄마에게 얘기했단다. 그러자 소현 엄마는 ""네가 참아. 그 애 엄마가 장애인이니까 그래. 장애인들은 다 그래""라고 했단다. 수진 씨는 명치가 걸리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들의 등뒤에 따라다니는 '엄마가 장애인이니까...'라는 말. 아들의 개구쟁이 모습을 그냥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봐주지 않고 장애인의 자녀이기 때문에 당연히 지저분하고 가정교육을 못 받아 개구쟁이고 버릇이 없으리라는 인식이 있다는 게 그녀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평소에 그녀가 아이들을 깨끗하게 씻겨 데리고 나가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 몸에 애들은 깨끗이 데리고 다니네"" 하던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지 새삼 그녀는 다시 생각해본다. 장애를 가진 엄마는 비장애엄마와 무엇이 다르기에 아이들도 다르게 보여지는 것일까. 그녀는 장애가 있는 엄마이지만 전문직업도 가지고 엄마로서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아들에게 엄마가 장애인이니까 더 깨끗해야 되고, 장난꾸러기여도 안되고, 공부도 더 잘해야만 한다고, 그래야 장애엄마의 자식이라는 말을 안 듣는다며 직장을 그만두려 한다. 그녀는 ""장애엄마에게서 어쩌면 저렇게 대단한 아들들이 나왔을까? 애들 같지가 않아""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기 위해 퇴직하겠다며 붉은 눈으로 하늘을 본다. 그런 그녀에게서 더 이상 장애여성 커리어우먼으로서의 당당함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박영희 님은 장애여성공감 대표입니다.)"
문서정보
문서번호 hc00012571
생산일자 2003-06-23
생산처 인권하루소식
생산자 박영희
유형 도서간행물
형태 정기간행물
분류1 인권하루소식
분류2
분류3
분류4
소장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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