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초국적 기업과 시장이 지배하는 '위로부터의 세계화'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먹구름을 드리우는가? 이에 대항하기 위해 인권운동은, 그리고 국제 사회권네트워크(아래 네트워크)는 어떤 접근을 취해야 하는가? 네트워크 총회 셋째날인 10일은 이에 대한 사례 발표와 토론이 주를 이뤘다.
""물이냐, 아니면 밥이냐""
이는 볼리비아 코차밤바(지역이름)의 가난한 주민들에게 중대한 선택의 문제였다. 1999년 수자원 관리체계의 사유화로 수도세가 50% 이상 인상됐기 때문이다. 짐 슐쯔(민주주의센터, 볼리비아)는 ""정부가 수자원을 사유화하게 된 데는 6억불의 부채탕감의 조건으로 이를 요구한 세계은행의 압력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벡텔사는 헐값에 코차밤바의 수자원관리 사업권을 따낸 후, 공식 상하수도 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에서 자체적으로 길어 쓰는 우물, 농업 용수에까지도 요금을 매기고 통제했다. 소득이 최저임금 수준인 가구는 소득의 25%까지를 수도세로 내야 할 형편이 되었고, 도저히 비싼 수도세를 감당할 수 없었던 민중들은 2000년 1월부터 네 달간 거리로 나와 대규모 저항을 벌였다. 볼리비아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고, 폭력적으로 시위대를 진압해 17세의 소년이 죽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는 비극까지 초래했다. 결국 벡텔은 같은 해 4월 사업을 포기하고 떠났으나, 이듬해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볼리비아 정부를 세계은행의 무역분쟁법정(ICSID)에 제소하는 보복에 나섰다.
짐 슐쯔는 ""WTO, 세계은행, IMF 등 무역 및 금융기구들은 사람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까지 사유화시키며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다""며 ""그런데 인권의 문제를 제기하면 이들 기관들은 돈을 들고 나가 버리고, 정부는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 버린다""고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어 ""국제금융, 무역 기구들의 인권침해를 법적 심판대에 올리면서, 불처벌의 악순환을 어떻게 깰 것인가를 네트워크에서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우린 죽어간다. 가난해서, 치료받지 못하기 때문에""
값싼 에이즈 치료약의 공급을 위해 싸우는 남아공 '치료행동캠페인'의 만들라 마졸라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약 4백3십만명이 HIV/AIDS에 감염돼 있는 남아공에서 가난과 죽음이 직결되는 건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저울질하는 제약회사와 국민의 생존권을 옹호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 부족 때문이다. 만들라 마졸라는 ""특허권을 일정하게 제한해 값싸게 의약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남아공 국내법을 공격한 다국적 제약회사와의 법정 싸움에서는 일단 승리를 거뒀지만, 정부가 법률 시행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며 ""국가가 다국적 기업과 눈치보고 타협할 때 시민들은 가장 기본적인 생명권마저 잃게 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최근 헌법재판소가 우리가 낸 헌법소원에 대해 정부에 분명한 이행 일정을 수반하는 HIV/에이즈 치료 계획을 세우라고 결정했다""며 정부의 태도 변화를 기대했다.
수자원관리 체계 사유화의 예나 특허와 값싼 의약품의 공급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권과 이윤의 충돌의 예는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차별금지·국제협력·후퇴조치 금지 등 기본적 인권의 책무를 국가에 촉구하며 사유화와 무역 및 투자의 자유화에 제동을 걸어보고자 하는 것은, 당장 달라지는 게 없을지라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른 한편, '위로부터의 세계화'에 맞서 인권을 옹호하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만드는 일 역시 꿈으로만 간직할 일이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