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기획> (3) 국가인권위원회 시대를 대비하자
내용
"국가보안을 위한 ‘안보’, 미풍양속을 해치는 ‘불온’에 이어, 이번에는 청소년 보호를 저해하는 ‘음란’이다. 서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개념들이지만, 이들은 검열을 위한 단골메뉴로 늘상 등장한다. 이들 앞에서는 헌법 제21조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와 제22조 학문 
예술의 자유 조항조차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

맹목적 검열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는 계속해서 짤려 나간다. 지난 2월 인사동 ‘노컷전’에서 종로경찰서 보안과 형사들은 안성금 화백의 ‘아!한반도’에 시비를 걸었다. 작품에 사용된 인공기가 안보에 어긋난다는 이유. 반면 최근 논란이 된 김인규 교사 홈페이지 부분폐쇄 해프닝 및 자퇴생 싸이트인 아이노스쿨넷의 전면폐쇄 조치는 불온을 이유로 한 검열이다.

한편 7월 1일 시행을 앞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아래 통신질서확립법) 시행령 제23조는 인터넷상 청소년유해매체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9월 시행될 음반비디오및게임에관한법률 제32조는 PC방 업자에게 컴퓨터 등에 음란물을 차단할 수 있는 프로그램, 즉 내용선별 소프트웨어의 설치를 의무화한다. 음란을 이유로 사실상 ‘검열’을 공식화한 법 조항들. 이때 음란물은 청소년보호법 제10조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에 근거한다.


검열피해는 국가인권위의 구제대상

현재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및 시행령 제16조 불온통신 관련 조항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다. 국가기관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했을 때, 이의제기,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의 권리구제절차도 활용된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아직 국내법의 테두리 내에 머무르는 한계를 가진다.

국가인권위 시대,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주체는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법(아래 법) 제30조에 의해, 언론 출판 및 학문 예술의 자유가 침해된 경우 국가인권위는 조사권한을 갖는다. 하지만 기존 권리구제절차와 달리, 국가인권위가 갖는 강점은 국제적 기준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아이노스쿨넷이 정보통신윤리위로부터 폐쇄당했을 때, 국가인권위가 있었다면 정보통신윤리위원장에게 이를 원상회복하고 관련 정책이나 법령의 개선을 권고할 수 있다. 정보통신윤리위원장이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거부할 땐 정당한 이유를 문서로 설명해야 한다. 이때 국가인권위는 이 문서를 일방적으로 공개할 수 있으며, 필요할 경우 고발 및 징계권고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쉽게 무시하기란 어렵게 된다. 표현의 자유 침해에 관한 또 하나의 권리구제 절차가 생긴 것.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국가기구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 이원재 정보팀장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국가의 인터넷상 검열’에 대해 “명확한 대안은 없으나, 검열의 위험성을 네티즌 및 대중들에게 알려 인터넷상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정보팀장이 이야기한 지극히 당연한 대응에 관해, 국가인권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많다.

예를 들어, 국가인권위는 법 제28조를 근거로 국제적 기준에 비추어 현재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려진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또한 불온 음란 등 모호하여 남용되고 있는 조항에 대해서는 엄격한 해석과 적용지침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때 주장해 왔던 기준과 근거들이 국가기관 내부로부터 제기될 수 있다는 의미.


계속되는 법 개악은 이제 그만

표현의 한 방법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는 집회 시위에 대한 자유도 국가기관에 의해 계속 침해되고 있다. 지난 16일 평화적으로 진행됐던 민중대회는 김대중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상징물을 사전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매도됐다. 이를 틈타 이팔호 서울경찰청장은 서울시내 주요도로에서 집회 시위를 제한하겠다는 기자회견까지 했다.

하지만 집시법은 오히려 집회 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공기관 1백미터 이내 및 주요도시의 주요도로에 집회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 그런데 이는 지난 99년 5월 24일 개악되어 국회를 통과한 내용이다. 당시 집시법개악은 부지불식간에 국민들의 의견이 전혀 수렴되지 않은 채 이뤄졌다. 하지만 국가인권위 시대에는 집시법처럼 인권에 영향을 미치는 법령이 제 개정될 때, 미리 국가인권위에 통보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인권위는 인권관련법안들에 대한 의견개진과 여론화를 통해 법안들이 형식적으로 국회를 통과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 수 있다.

국가인권위는 국가기관이면서도 국가기관의 검열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의무를 가진 독특한 기구다. 안보 불온 음란이라는 논리로 국가기관에 의해 끊임없이 침해되어 온 표현의 자유가 바야흐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문서정보
문서번호 hc00001270
생산일자 2001-06-27
생산처 인권하루소식
생산자 범용
유형 도서간행물
형태 단신
분류1 인권하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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