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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수원 남부경찰서 소속 최모 의경이 고참의 구타에 못 이겨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짜증과 답답함이 아직도 내 온몸을 뒤틀고 있다.
2년 전에도 수원남부경찰서 소속의 한 의경이 시민단체의 게시판에 경찰서 내에서 자행돼온 구타의 실상과 조직적인 은폐를 낱낱이 폭로하고 도움을 호소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이런 문제점들이 개선이 안된다면...또 다시 형식적인 조사를 한다면...5월의 어느 날 경찰청 앞에서 분신자살을 할 것입니다.""
당시 수원의 인권사회단체들은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비밀리에 피해 의경을 찾아내 제보내용이 모두 사실임을 밝혀냈다. 경찰은 뒤늦게 가해 의경을 형사처벌하고 지휘책임자를 문책했으며, 의경들에게 인권교육을 시키고, 경찰관과 의경을 1:1로 형제 결연을 맺도록 하는 대책을 마련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를 잊어버렸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의경의 구타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경찰의 대책이나 인권단체의 대응조차도 2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경찰은 책임자 문책, 의경의 정신교육과 상담, 구타사고 예방 특별교육과정 신설 등 여러 대책을 쏟아냈다. 인권단체들도 인권전문가가 상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의경의 구타문제가 근절되지 않을 거라는 나의 비관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는 먼저 경찰 안에 흐르고 있는 구타에 대한 인식과 의경을 움직이는 조직논리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그 동안 경찰 인권교육의 과정에서 의경의 구타문제에 대한 미묘한 인식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 경찰은 구타가 근절돼야 할 악습인 것은 맞지만 인권활동가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너무 과장하는 것 아니냐며 반론을 제기했다. 20대의 팔팔한 젊은이들을 통솔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구타나 얼차려를 묵인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오히려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로 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인식이었다. 이러한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구타를 방임하는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재 경찰은 의경의 존재 의미나 활용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사고하는' 의경이 아니라 지휘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의경을 원하고 있다. 구타가 근절되기 위해서는 의경 개개인이 인권의식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각종 시위진압 업무를 일사불란하게 수행해야 하는 의경의 의식과 구타를 용납하지 않는 의경의 인권의식은 서로 양립하기 어렵다. 이 경우, 의경 개개인의 인권의식은 부수적이거나 오히려 업무수행에 저해가 되는 것으로 취급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 방향은 분명해진다. 의경들 개개인이 모두 인권의식으로 무장하게 하는 데 대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하고, 나아가 징병제에 따라 입대한 젊은이들을 강제로 시위진압 업무에 동원하는 의경제도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김칠준 님은 다산인권센터 운영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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