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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말,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세력이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한국의 법률들을 난도질할 때, 대학원에 다니는 내 친구 하나가 그 '국보위'의 노동법 개정과 관련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친구가 했던 일은 다름 아닌 '우간다'노동법 번역이었다. 그런 나라들의 노동법까지 참고하면서 새로 만든 노동법 조항이 바로 '제3자 개입금지'였다. 그 조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 나라에만 있었다고 하니 우간다 노동법에도 '제3자 개입금지'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공동체에서, 노동쟁의에 대해서는 그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 외에는 어느 누구도 도움을 주어서는 안되고 행여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곳에 가서 ""여러분, 승리하십시오""라고 용기를 주는 말 한 마디라도 했다가는 형사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제 3자 개입금지 조항의 내용이었으니, 그 합리성은 어떤 설명으로도 인정될 수가 없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제3자 개입금지 조항 위반으로 처벌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 조항은 개폐되어야 할 악법 조항 중에서도 상위로 꼽혔고 실제로는 사문화된 조항이었다. 그러다가 문민정부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파업과 관련하여 현대그룹 소속 노동조합 대표들을 제3자 개입금지 조항 위반으로 구속하자, 신문은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기사의 제목을 ""관 뚜껑 열고 되살아난 제3자 개입금지""라고 뽑았을 정도였다.
지난 97년 노동법 개정으로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은 폐지되었고 지금은 지원신고제도로 그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법원은 지난 20일 양규헌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에게 제3자 개입금지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94년 6월에 벌어졌던 서울지하철 노조의 파업 등에 '개입'했다는 것이 그 혐의사실인데, 그 재판을 몇 년 동안이나 끌어오다가, '경찰 폭력'이 온 국민의 지탄을 받는 묘한 시기에 그와 같은 판결을 내린 것이다. 양규헌 씨는 위 사건으로 96년 2월에 구속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나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다. 이미 폐지된 법률이 ""관 뚜껑을 열고 되살아나"" 한 평범한 시민의 행복을 빼앗아갔다. 이것에 대해 어떤 합리적 설명이 가능한가.
뿐만 아니라 법원은 지난 27일 국민·주택은행노조 파업관련자 26명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이용득 금융노조 위원장 등 이미 구속된 3명에게 업무방해와 폭력행위를 적용,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당초 불구속 기소된 금융노조 간부 6명에게도 중형을 내리고 법정 구속했다.
노조활동을 조직폭력배의 행위와 동일시하는 한, 우리는 양심의 보루라 하는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다. 노동운동을 마치 말살해야 할 불순한 행위로 취급하는 한, 개혁은 없다. 공안정국의 굿판을 이제 그만 걷어치워야 한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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