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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상 국가가 외국인의 입국을 허가할 일반적 의무는 존재하지 않고, 외국인의 입국 허용 여부는 당해 국가가 자유 재량으로 정할 사항이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유승준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입국의 자유가 인정되기 않는다. 따라서 입국금지로 인한 기본권 침해는 없다.""
가수 유승준 씨의 입국을 거부한 법무부를 상대로 제기된 진정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28일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인권위법 39조 2항에 따라, 진정의 내용이 ""인권침해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씨는 지난해 1월 미국 시민권을 획득해 국내 병역의 의무가 소멸됐으며, 이에 대한 병역기피 논란이 일면서 같은 해 2월 인천 국제공항에서 입국이 불허됐다.
'외국인에 대한 입국거부 조치는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해석은 일면 국제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시민·정칙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2조에 따르면, 한 국가 내에서의 거주·이동과 다른 나라로의 출국은 내·외국인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의 권리로 인정되고 있지만, 입국의 자유는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에 대해서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인권위 김원숙 조사관은 ""(한 국가의) 외국인에 대한 입국거부 권한은 국제관습법상 인정되는 원칙""이라고 밝혔다. 국제법을 전공한 인천대 노영돈 교수도 ""문제가 되는 외국인에 대해 인도적 견지에서 제한적으로 입국을 허용해 줄 여지는 있겠지만, 입국을 허가하는 것은 국가의 재량 행위로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며 인권위의 결정을 지지했다.
국가 재량권 무한정 허용은 안돼
그러나 이번 인권위의 결정이 인권적으로 전혀 문제없는 것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출입국의 허가 여부가 아무리 국가의 재량권에 속하는 문제라 할지라도, 인권보장을 위해 국가의 재량권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이미 국제법 안에서도 도입되고 있다. 아동권리협약 10조는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아동 또는 그 부모에게 출국은 물론 입국할 권리를 보장해야 국가적 책임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권위는 이번 입국거부 조치에 대해 국가 재량권의 정당한 행사였는지에 대한 판단을 했어야 했다.
또한 인권위가 국가 재량권이라는 일반원칙 외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 유씨에 대한 입국거부 조치를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출입국의 문제에 대해서는 인권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는 위험한 관념을 유포시키기에 충분하다. 출입국에 대한 국가의 재량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인권의 원칙에 따라 필요한 경우 제한되어야 마땅함에도 말이다.
만약 출입국의 문제에 대해 아무런 조건 없이 국가의 재량권을 인정한다면 △99년 프랑스 실업자운동가 아기통 씨 등 해외 진보인사에 대해 법무부가 별다른 이유 없이 입국을 불허한 경우나 △독일 송두율 교수 등 해외 민주인사들에 대해 국가이익에 저해된다는 추상적인 이유로 계속 입국을 불허하는 경우에 대해 인권위는 어떠한 권고도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이번 결정을 통해 인권위가 씻은 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우를 범한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인권위는 비록 유씨의 입국거부 조치가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더라도, 국가가 과도하게 자신의 재량권을 행사하지는 않았는지 분명히 밝혔어야 했다. '병역의 의무를 지겠다'는 스스로의 공언을 저버린 유 씨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보복적 성격이 강한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 또한 정당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 외면한 결정
또한 유씨의 입국을 둘러싼 문제의 발단은 인권침해적 군대제도 자체에 있다는 점도 지적되었어야 한다. 사실 징병제 아래서 잦은 구타 등 열악한 처우와 병영환경은 징집대상 남성들의 항상적이고 광범한 불만을 초래하고 있다. 이것이 병역기피 현상의 원인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병역을 이행하지 않는 고위층의 아들이나 남성 연예인 등이 언론의 조명을 받았을 때 징집대상 남성들의 집중포화가 쏟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유 씨의 경우도 그러한 예의 전형일 것이다.
이러한 병역기피 현상은 징병제에 대한 근본적 검토, 군내 인권수준의 개선 등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의 조치는 오히려 병역기피를 명분으로 유 씨를 단죄함으로써 군대제도에 대한 남성들의 불만을 일시적으로 무마하는 데 그쳤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인권위는 결국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이에 대한 인권적 처방을 내리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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