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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측의 방해로 수용자가 제때 소송을 하지 못했다면 이 기간에는 시효가 적용될 수 없다는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또한 같은 판결에서 교도소 내 계구를 사용할 때 행형법시행령이나 계호근무준칙 등은 적법 여부를 따지는 절대적 판단기준이 될 수 없다는 획기적 판단이 나와 그동안 두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자행돼 왔던 인권침해에 빨간불이 켜질 전망이다.
대법원은 지난 7월 25일 청송교도소와 청송보호감호소를 출소한 유득형(51) 씨가 ""수감 중 교도관으로부터 과도한 계구 사용과 가혹행위, 집필권 침해로 인한 소송 방해, 접견권 침해 등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유 씨의 승소를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송 방해한 뒤 시효 주장 허용 안돼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유 씨가 소멸시효 내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 손해배상청구 사건의 시효가 경과했다'는 피고(법무부)의 주장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권의 권리행사를 현저히 방해한 피고(법무부)가 소멸시효의 주장을 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 씨가 불법행위를 당한 날로부터 민사상 시효인 3년을 경과한 후 소를 제기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이는 교도관들의 권리방해로 인한 것이었음으로 그 기간에 대해서는 시효가 배제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수많은 수용자가 집필권 등의 방해로 제때 소송을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시행령·규칙만으로 기본권 제한 못해
계구사용과 관련해서도 대법원은 ""법률의 구체적 위임에 의하지 아니한 행형법 시행령이나 계호근무준칙 등의 규정은 위법성 판단을 함에 있어 참고자료가 될 수는 있겠으나 그 자체로써 수형자 또는 피보호감호자의 권리 내지 자유를 제한하는 근거가 되거나 그 제한조치의 위법여부를 판단하는 법적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현 행형법은 계구사용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채 계구의 종류별 사용요건 및 사용절차, 계구의 모양 및 사용방법 등을 각각 시행령과 준칙 등에 위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찬운 변호사는 ""계구사용은 인권침해의 위험성 때문에 사용요건 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해 그 남용을 방지해야 하는데, 현 행형법은 이에 대해 매우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계구 남용에 대한 인권침해가 계속돼 왔다""며 ""이번 판결이 '행형제도의 법률화'를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아울러 정당한 사유 없이 접견 도중 접견을 방해하는 행위 역시 위법하다고 결정했다. 즉, 소장으로부터 면회의 허가를 얻은 이상 그 대화 내용에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로이 접견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중단시킨 교도관의 조치는 접견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가혹행위 외면 납득 안가
하지만 교도관들의 의한 가혹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요구에 대해선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유 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소송을 담당한 이상희 변호사는 ""대법원 역시 유 씨의 온몸에 뚜렷이 남은 쇠사슬 등의 상흔을 외면하고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며 대법원의 판결에 실망감을 표시했다.
유 씨는 지난 92년과 96년 '청송'에 두 차례 수감돼 99년 1월 보호감호까지 받는 동안 △소송 제기를 위한 집필권 침해 △손해배상청구사건의 시효(3년) 경과 여부 △6개월간 계속된 계구 사용 △접견 도중 가혹행위에 대해 언급했다는 이유로 접견을 중단한 부분에 대한 접견권 침해 △다른 재소자로부터 폭행 당한 사건에서의 교도관 과실 △교도관의 가혹행위 등에 관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 지난 99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유 씨는 1심과 2심에서 고문 및 가혹행위를 제외한 모든 사안에 대해 기본권 침해를 인정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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