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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2월초, 김성학씨는 영문도 모른 채, 기관원들에 붙들려 경기도경 대공분실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다음해 2월까지 전기고문, 물고문, 잠 안재우기, 구타를 당하며 까무러치고 깨어나고 다시 까무러치는 72일을 보냈다. 가해자들이 원했던 것은 단 하나, 자기들이 ""써놓은 시나리오대로 자백""하라는 것. 견딜 재간이 없었던 김씨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간첩이 되었고"", 검찰로 이첩되자 선처를 조건으로 전향서까지 작성했다. 이후 그는 5개월 만에 무죄 방면되었다.
이근안 기소, 미흡한 단죄
""기막힌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김씨는 이근안 등 16명을 고소하였고,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리자, 87년 12월 10일 결국 서울고법에 재정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마침 김근태씨가 이근안 등을 지목해 서울고법에 낸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 시효가 정지되고, 98년 서울고법이 김성학씨의 재정신청 마저 받아들임으로써 이근안에 대한 공소시효가 2013년으로 연장되었다. 대한변협과 민가협이 나서서 수배전단을 날리고, 경찰이 500여만 장의 수배전단과 연인원 389만 여명을 동원해 검거작전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10여 년간 잘 피해 다녔던 이근안. 그러나 그도 21세기까지 연장된 시효에는 더 이상 버틸 힘을 잃고 99년 10월 성남지검에 자수, 1심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민가협 등은 ""그가 저지른 잔악한 범죄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이라 반발했다. 실제로 이근안에 지워진 숱한 고문 의혹중 단 한 건만 받아들여진 점, 그 윗선인 박처원, 정형근 등이 실질적으로 면죄부를 받은 점 등을 들어 '구색맞추기식 판결 아닌가'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다.
고문범죄 처벌 끝이 아닌 시작
이근안에 대한 처벌은 고문 등 국가범죄에 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기보다는 본격적인 문제 제기의 계기로 작용했다. '조작간첩' 이장형, 함주명씨 등 많은 이들의 재정신청은 거의 예외없이 외면당했고, 헌법재판소에 제기된 위헌심판은 별다른 고민 없이 각하 되었다. 당시 한 단체가 ""적게는 수천건, 많게는 10만건""에 이른다는 추정치를 내놓을 만큼, 광범위한 고문 피해 사례가 접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자면, 무엇보다도 가해입증이 어려운 고문 범죄의 특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성학씨를 고문했던 자들은 ""네가 여기(경기도경 대공분실)에 있는 건 니 가족도 모른다.""고 위협하는 한편, 서로를 부를때 ""사장이니 백곰이니""했다고 한다. 어두운 밀실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자들이 일을 저지르고, 그 자들이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하는 고문범죄의 속성상, 수사기관내부를 들여볼 수 없는 개인이나 민간단체가 피해자의 주장을 입증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증거를 찾았다하더라도 군사독재 당시,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처벌하라고 나서는 자체가 ""자살행위""였던 터라, 비로소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된 때에는 이미 '공소시효'를 넘기고 난 뒤였다.
고문범죄에 대한 처벌이 어려워지자, 한편에서는 ""왜 꼭 가해자들을 처벌하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다른 한편에서는 ""실정법으로 어려운 걸 굳이 들추어서 평화를 깨뜨릴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불거져 나왔다.
그러나, '국가권력의 민주화' 같은 거창한 이야기를 거론하지 않는다 해도 피해자가 있기에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 노력은 시효라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중단될 수 없는 것이었다. 피해자 자신에게 있어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는 지속적인 2차, 3차 피해를 불러온다는 점에서도 한번 참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84년 6월 ""67일간의 고문을 통해 간첩이 된"" 이장형씨는 ""사회에 나와서도 주변의 시선이 두렵고, 또한 어딜가나 간첩 딱지가 따라 다닌다""고 말한다. 이씨에게 있어 조작간첩사건은 과거 한 때의 악몽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현재의 삶을 가로막는 장벽이었던 것.
고문범죄 근절의 걸림돌, 공소시효
피해자와 함께, 또는 다른 관점에서 시민사회의 노력도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으로 수지김 살해사건을 들 수 있다. 상해주범 윤태식은 처벌되었지만, 단순한 살인사건을 간첩사건으로 조작한 장세동이 시효를 넘겼다는 이유로 법망을 빠져나가자,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 등 13개 단체는 2002년 5월, '반인도범죄등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을 입법 청원하였다. 이는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시효에 구애됨이 없이 처벌하려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시효적용 배제원칙은 48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93년 유고 전범재판을 거쳐, 98년 로마규정을 바탕으로 작년 7월 출범한 국제형사재판소에 이르러 국제관습법으로 확고히 정착되었다.
로마규정은 반인도적 범죄를 '반드시 처벌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반드시'라는 함은 그 하위 원칙으로 시효에 구애받지 않을 것(시효부적용의 원칙), 모든 나라가 예외없이 처벌할 것(보편적 관할의 원칙)을 요청한다. 이 규정에 따른다면, 모든 고문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근안류'의 △대공수사기관의 조직적 비호를 받으며 저지른 △전기고문 등 심각한 비인간적 행위를 처벌하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특히 로마규정 비준국인 한국은 국내이행입법 의무에 따라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시효에 구애받지 않고 처벌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시급히 제정해야할 것이다. 이는 고문과 조작으로 대표되는 어두운 과거를 넘어, 국가권력이 인권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 재건된다는 의미를 갖는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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