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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걸프전 때, 일본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유엔 다국적군에게 일본이 지불한 90억 달러 가량의 전비 지원금을 놓고 대대적인 시민소송운동이 일어났다. '평화를 위한 시민소송'에 참여한 시민 3000여명은 국가를 상대로 전비 부담과 해외 파병이 위법한 것이며 시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항의했다. 그리고 걸프전에 가담함으로써 납세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한 만큼, 이에 대해 국가가 손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99년 유고공습 때에도 비슷한 행동이 있었다. 미국과 나토의 유고공습에 항의했던 전쟁거부자연맹(WRL)이라는 단체는 납세를 거부하면서 ""우리의 세금을 살인이 아니라 유고의 난민과 빈민을 지원하는 데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이외에도 '전화세에 포함된 전쟁세 안 내기 운동', '전쟁세의 일부를 오직 인도적 목적에만 사용할 수 있는 평화세로 전환하자는 캠페인' 등을 펼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이 실천하고 있는 전쟁세 거부운동은 '전쟁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작지 않은 영감을 던져 준다. 무엇보다 이들의 운동은 우리에게, 전쟁·폭력·살인 따위와 우리의 일상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강하게 문제제기하고 있다. 부당한 전쟁과 살인에 사용되는 돈이 사실은 우리 일상에 스며든 전쟁협조체계, 즉 납세를 통해 전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마련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의 행동은 평화와 안전이라는 것 또한 누군가 보장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며, 전쟁을 거부할 권리·평화를 추구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스스로 주장하고 행동함으로써만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진지한 마음을 가진 평화주의자들은 게으른 꿈과 싸우거나 단지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실제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폭력에 저항하는 일상적인 실천은 여전한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라크라는 해외의 전장이 우리의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문제제기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전쟁세 거부운동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당한 이라크 점령에 협조하는 국가에 항의하고, 전쟁세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또한 평화를 위한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사실을 주장함으로써, 은은하지만 끈질긴 평화운동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손상열 님은 평화인권연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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