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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독재권력의 위험성을 꼬집는 이 말이 '음지에서 일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의 일상 곳곳에 감시의 촉수를 들이댈 수 있는 이들 비밀정보기관이 '국민이 아닌 정권과 조직의 안보'를 위해 권한을 남용해 온 일은 줄곧 있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통제받지 않는 비밀정보기관이 수사권까지 갖고 있을 때의 위험성이란 가공할 만하다.
수사권을 가진 정보기관의 몇 안 되는 역사적 사례로는 나치-독일의 게슈타포, 구 소련의 KGB, 구 동독의 슈타지가 흔히 꼽힌다. 이들 악명높은 '공포정치'의 주인공 가운데 대표주자격인 게슈타포는 '초법적 예비검속'으로 수많은 지식인과 유대인, 노동운동가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엄청난 밀고자를 주민 가운데 심어놓은 것으로 유명했던 슈타지 역시 둘째가라면 서럽다. 아직도 부모들이 아기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수타지 온다""고 말할 만큼, 구 동독에서 암약했던 이 정보수사기관이 가져온 일상적 공포는 위력적이었다.
정보수사기관, 공포정치의 엔진
바로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국가들은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의 분리 원칙을 채택해 특정 정보기관에 권한이 집중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교훈과는 거리가 먼 국정원이라는 거대 권력기관이 떡 하니 자리잡고 있다.
'국정원=고문수사', '국정원=공작정치'라는 등식이 아직도 자연스레 받아들여질 만큼, 이 정보수사기관은 우리 현대사에서 수많은 조작사건과 권력형 비리사건의 제조기 노릇을 해 왔다. 70년대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과 인혁당재건위 사건, 87년 '수지김 사건'을 비롯한 각종 용공조작사건은 물론, 안기부 예산을 특정 정당의 선거자금으로 유용했던 '안풍' 사건과 각종 '권력형 게이트' 뒤에도 어김없이 이 기관이 등장했다.
이 모든 일은 중앙정보부에서 안기부를 거쳐 오늘날의 국정원으로 문패를 바꿔 달면서도 비밀의 장막 뒤에 몸을 숨긴 채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비밀수사를 전개할 수 있는 알짜배기 권한만은 내놓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더구나 대통령 직속의 국정원은 다른 행정부처는 물론 국회의 견제조차 거의 받지 않는다. 예산과 조직, 구성원을 비밀에 부친 채, 법원의 허가도 받지 않고 광범위한 감청을 행할 수 있는 권한을 누려왔다. 불법구금, 고문, 불법 도청 등에 대한 의혹이 일 때마다 국정원은 법이 보장한 '비밀주의'라는 엄호막 뒤로 숨어버리곤 했다.
비밀의 장막 뒤 초법적 권한 누려
물론 현 고영구 국정원장 체제하에서 일정한 내부개혁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최근 국정원은 탈권력화와 탈정치화를 기치로 '조직 내 노른자위'로 불리는 2차장 산하 대공정책실을 축소·개편하고, 국내 보안사범에 대한 수사권도 검·경에 이관했다. 사찰성 정보수집 업무와 정부·언론 등에 대한 상시 출입 관행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사권 자체와 과도한 비밀주의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 언제 후퇴할지 모르는 내부개혁만 단행됐을 뿐, 권력 행사의 투명화를 강제할 제도적 통제 장치는 전혀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단체들이 ""국정원의 권한 강화를 위한 법일 뿐""이라고 비판하는 테러방지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국정원은 새로운 권한들을 대거 챙길 수 있게 된다. 대테러활동을 빌미로 다른 국가기구들을 지휘·조정할 수 있는 권한은 물론, 특수부대나 군병력 출동 요청권, 외국인 추방 요구권까지 갖게 되는 것이다.
국정원에 새 날개 달아주는 테러방지법
무엇보다 국정원이 테러방지를 빌미로 영장도 없이 광범위한 감청과 사찰을 일상화할 위험이 농후하다.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도 일련의 반테러 법률과 조치에 따라 무분별한 감청과 비밀수사를 통한 사회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이계수 교수(울산대 법학)는 ""테러방지법이 먼저 시행된 외국에서 실제 이 법에 따라 기소되고 재판을 받은 테러혐의자는 소수에 불과하다""며 ""실제로 이 법은 테러방지보다 전국민을 상대로 한 정보수집과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 '반공과 국가보안법'에 기대 공포를 주입해왔던 국정원이 이제는 '반테러리즘과 테러방지법'이라는 날개를 달고 그들만의 자유를 계속 보장받게 될 위험성이 짙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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