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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노동자의 산재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살인적인 노동강도'라는 말이 체감될 만큼 노동자들이 생명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것이다.
21일 울산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인 무진기업의 노동자들이 선박 엔진룸 세척작업 도중 유독성 가스에 의해 질식되어 사망 및 부상당한 일이 발생했다. 가장 기본적인 환기장치인 팬조차 설치되지 않은 밀폐된 공간에서, 독극물로 분류되는 '아리노'라는 화학제를 사용해 세척 작업을 진행하던 중 발생한 사고였다. 사고를 당한 두 명 중 조추현(51) 씨는 현장에서 사망했고, 또 다른 한 명은 의식불명상태로 병원에 이송돼 간신히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다. 이들은 현장에 방치돼 있다가 저녁 6시 퇴근시간을 앞두고 이들을 찾아나선 동료들에 의해 발견됐다. 당시 작업장 내부는 이들을 찾으러 들어간 노동자 두 명 중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한 명이 실신할 만큼 유독가스로 가득차 있었다.
또한 지난 13일에는 과로로 인한 '급성심근경색'으로 강성구(43) 씨가 세상을 등졌다. 강 씨는 9일 오전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24시간 동안 철야근무를 한 상태에서, 10일과 11일 밤에도 연이어 12시간씩의 야간 노동을 강행해야했다. 결국 강 씨는 13일 오전 출근 후 근무를 서던 중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며 탈의실에 쉬러 갔고, 40분이 지난 뒤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과도한 노동강도가 또 한 노동자의 생명을 집어삼킨 것이다.
이 두 사건 외에도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 두 달 남짓한 사이 산업재해로 인해 하청노동자 3명의 생명이 사라져 갔다. 8월 26일 압착사고로 고광수(52) 씨가 유명을 달리했으며, 9월 8일과 10월 1일에는 작업 중 추락 사고로 인해 강동원(42) 씨와 임채원(54) 씨가 세상을 하직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의 조성웅 위원장은 ""하청노동자들은 아무리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시켜도 사측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다. 회사에서 짤리지 않으려면 끽소리 없이 그냥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다""며, 하청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조건에 울분을 토했다.
울산산업재해추방운동연합의 현미향 사무국장 역시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팔 한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도 눈밖에 날까봐 산재신청조차 내지 않는다. 견딜만 하다 싶으면 참고 일해버리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며, ""이들은 근로기준법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돼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울산지방노동사무소 산업안전과의 전성준 씨는 ""하청노동자들의 근무조건이 열악하다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7명에 불과한 산업안전감독관이 울산지역의 그 많은 사업장의 작업환경을 일일이 감독한다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며 ""결국 현장에서의 기본적인 안전조치는 사업주와 노동자가 함께 해결해 나가는 수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150개 하청업체 중 노조있는 곳 거의없어
조성웅 위원장은 ""과도한 노동강도와 기본적 안전마저 지키기 힘든 열악한 작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하청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이 필요한데, 이마저도 업체의 해고 위협 앞에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 말을 증명하듯 지난 8월 30일 노조설립필증을 교부받은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들은 업체의 위장폐업과 부당징계라는 상황에 직면해야만 했다. 현재 150여 곳이 넘는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업체 중 제대로 된 개별 노동조합이 있는 곳이 하나도 없는 형편에서 노사협의란 말은 공허하게만 들릴 뿐이다. 하청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산재로 인한 노동자들의 장례행렬은 결코 멈출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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