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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학교에 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이 있었다. 어느 겨울날 그 길에 '거지'가 등장했다. 추워서인지 술을 마셔서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벌건 얼굴을 하고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을 노려보던 그 아저씨는 어떤 건물 계단에 앉아서 떠나지 않았다. 학교에는 그 아저씨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식인종 괴물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을 정도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문 속에서 유괴범도 되고 괴물도 되었던 그 아저씨는 겨울이 끝나자 다른 곳으로 떠났다.
나는 그 아저씨가 불쌍하면서도 한편으론 한심했다. 그 때 나는 ""사람은 노력하는 만큼 성공한다""는 말을 무작정 믿고 있었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무능한 게으름뱅이라고 생각했다.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성공한 사람과 대비되는, 행색도 볼품없고 아이들한테까지 무시당하는 그들에게 나는 어린 나이에 참으로 가당치도 않은 냉소를 보내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그 아저씨가 '노숙자' 혹은 '홈리스' 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단순히 자기가 노력하지 않아서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경제위기 때문에 사업이 망했을 수도 있고,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이 개인의 능력 여부 이전에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사회적인 대책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노숙자들이 개인의 무능함 때문에 그런 처지에 놓인 것이니 자력구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노숙자들 본인의 의지가 문제 해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 문제가 기승을 부리는 이때 노숙자가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노숙자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던 것이 IMF가 닥쳤던 지난 97년이었음에도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울역에는 낮이면 광장에서 담배를 태우다가 밤에는 박스 한 장에 몸을 의탁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숙자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면서 기본적인 위생문제나 식량문제는 개선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은 듯하다. 정부에서는 노숙자를 위한 재사회화 교육 프로그램 등을 실시하여 노숙자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작은 상처는 기다리면 저절로 치유가 되지만 큰 상처는 가릴수록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큰 상처는 드러내놓고 치료를 해야만 한다. 노숙자 문제는 이 사회에서 큰 상처에 해당한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이제라도 공개적인 논의를 통해 노숙자들을 사회의 상처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또 추운 겨울이다. 이 추운 겨울을 거리에서 보내야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선미 님은 청소년의 힘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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