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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2003년 10대 인권소식'을 발표합니다. <인권하루소식>은 독자와 인권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올 한해 동안 발생한 주요 인권사건(전체 59문항)에 대해 12월 2일부터 5일까지 나흘간 설문조사를 벌였으며, 이번 조사에는 모두 97명의 독자와 인권활동가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편집자주>
1. 네이스 반대투쟁, 정보인권 수호 대장정 닻 올라 (85.6%)
올 한해 뜨겁게 전개됐던 네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 반대투쟁은 전자화된 국민감시시스템에 경종을 울리며 우리 사회에 '정보인권'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안겼다. 정보인권수호를 위한 이 대장정은 지난 3월 교육부가 국민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네이스를 강행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에 2만 여명의 학부모, 학생들이 개인정보 입력 동의거부서를 교육부에 전달했고, 교사들은 인증·입력 거부로 맞섰다. 인권사회단체들도 자기정보통제권 침해가 불러올 감시통제사회의 도래를 경고하며 네이스 반대에 한 목소리를 냈다.
뒤이어 5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프라이버시권 침해 요소를 지적하며 개인정보영역의 삭제를 권고, 네이스 문제 해결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교육부는 인권위 권고를 존중하겠다던 애초 약속을 번복, 6월 1일 네이스 시행 여부를 개별 학교에서 결정하도록 하며 교육정보화위원회를 구성해 개인정보영역을 재검토하겠다는, 한참 뒷걸음질친 시행지침을 내놓았다.
이를 계기로 네이스 반대 투쟁은 사회전반으로 더욱 확산됐다. 졸업생들은 손배소송을 통해 개인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국가의 위법한 '정보도둑질'에 저항했고, 인권활동가들은 단식농성으로 네이스가 중대한 인권침해 시스템임을 폭로했다. 전교조는 연가집회를 단행했다. 7월부터는 48개 인권사회단체들이 네이스반대공대위를 구성해 결집된 투쟁을 시작했다. 공대위는 교육정보화위원회에 참가해 잘못된 정부정책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는 한편, 촛불집회와 서명운동 등을 통해 네이스의 반인권성을 국민들과 학생들에게 알려나갔다.
12월 15일로 예정된 교육정보화위원회의 결정은 네이스 투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새로운 전기가 되겠지만, 학생들의 개인정보가 학교 담을 넘는 한 반대의 불길은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올해 네이스 반대투쟁은 국가와 자본에 의해 추진되는 전자국민감시시스템에 맞선 대장정의 서막이었다.
2. 미 이라크 대량학살전 개시…한국군, 침략군 일원 자처 (83.5%)
2003년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침략을 감행, 인권과 평화를 죽음의 수렁에 몰아넣었다. 또한 한국 정부는 침략전쟁을 부인한 헌법조차 묵살하며 침략군의 일원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3월 20일 미국은 국내·외 반전평화 염원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이라크에 대한 대량 학살전을 시작했다. 전 세계는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외침으로 들썩거렸고, 국내에서도 이러한 뜻에 동조하는 시민·노동자·학생들의 한국군 파병 반대 시위와 농성이 도심과 국회 앞을 뜨겁게 달궜다. 이라크와 요르단 현지에서 평화운동가들이 보여준 뜨거운 국제연대의 정신은 국내 반전 분위기를 촉진하는 불씨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른바 '국익'과 '안보' 논리를 앞세우며 파병방침을 고수했고, 국회도 4월 2일 결국 파병안을 통과시키고야 말았다. '이라크인의 절반이 어린이'라는 현실을 알면서도 한국은 '그들의 피'를 선택한 것이었다.
4월 10일 이미 12년간의 경제봉쇄로 쇠약해져 있던 이라크 바그다드는 전쟁 시작 3주만에 미국에 의해 함락됐고, 많은 민간인 사상자와 폐허가 된 도시만이 남겨졌다. 그러나 다시금 이라크 민중들의 게릴라 식 저항에 직면한 미군은 세계 각국에 추가 파병을 요청하고 나섰다. 9월 9일 한국 정부도 미국의 전투병 파병 요청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속속 이어지는 다른 나라들의 파병 거부 혹은 철회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가 '나 홀로 파병'을 고수하자, 10월 31일 4백 개 남짓한 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을 중심으로 파병반대 운동이 다시금 점화됐다. 이 밖에도 11월 21일 휴가 나온 이등병 강철민 씨가 자대 복귀를 거부하고 22일 동화작가 박기범 씨가 단식농성을 진행하는 등 파병 반대 움직임은 계속 퍼져나갔다. 마침내 11월 30일 최초로 이라크 현지 한국 노동자 피격 사건이 발생하자, 파병 결정을 철회하라는 요구는 더욱 강하게 터져 나왔다.
그러나 12월 3일 정부는 파병동의안을 조속히 국회에 제출하겠다며, 이라크인과 한국민의 안전을 모두 위협하는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기를 재촉하고 있다.
3. 반핵 깃발 아래 하나된 부안, 정부 밀실행정에 경종 (80.4%)
90년 안면도, 94년 굴업도에 이어 2003년에는 전북 부안에서 반핵 깃발이 휘날렸다. 7월 11일, 바로 전날까지 핵폐기장 반대입장을 밝혔던 김종규 부안군수가 핵폐기장 유치를 기습 신청하고 24일 산업자원부가 위도를 최종후보지로 발표하자, 군수의 독단과 정부의 밀실행정에 분노한 주민들이 생업마저 포기한 채 '핵폐기장 백지화'를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7월 26일 주민들이 스스로 '반핵민주광장'이라 이름 붙인 부안수협 앞 광장에서 켜진 촛불은 한여름 거센 태풍에도 꺼지지 않고 매일 타올랐다. 주민들의 분노는 차량시위, 고속도로 점거시위, 해상시위로 점점 확장됐고 친목회, 체육회 등 각종 주민 모임에서도 지지성명을 발표해 뒤를 받쳤다. 8월 25일부터는 초중고 학생들까지 집단 등교거부에 나섰으며 군의회마저 '군수 사퇴 권고안'을 통과시키고 등원을 거부하는 등 부안군 전체가 반핵 깃발 아래 하나가 됐다. 게다가 위도 내 활성단층의 존재와 해수유입 의혹이 제기되는 등 정부의 졸속 지질조사에 대한 비판도 거세게 일었다.
완강한 저항에 맞닥뜨린 정부는 10월 3일 주민대책위 측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기구 구성에 합의했지만, 속내를 바꾸지는 않았다. 대책위는 ""연내 주민투표를 실시해 그 결과에 따르자""는 최병모 변호사의 중재안을 받아들인 데 반해 정부는 ""찬반토론 분위기 조성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이를 거부해 빈축을 샀다. 대화기구가 아무런 진전도 보지 못한 채 한달 넘게 '시간 끌기'를 계속하자 참다못한 주민들이 11월 17일 부안군청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정부는 인구 2만3천의 부안 읍내에 경찰 8천여 명을 투입, 평화로운 촛불집회마저 원천봉쇄하고 항의하는 주민들을 폭행했다.
12월 1일 현재 구속 31명, 불구속 76명 등 총 316명이 사법처리됐고 3명은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500여명이 부상당했다. 하지만 ""위험한 핵에너지만 고집 말고 에너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라""는 주민들의 요구는 식을 줄 모른다.
4. 송두율 37년만의 귀국, 유린당한 양심 (78.4%)
분단과 냉전, 군사독재에 의해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던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의 귀국이 37년만에 이루어졌다. 입국을 거부당하고 있던 해외 민주인사들의 묶인 발을 풀고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온 인권사회단체들이 일구어낸 작은 결실이었다. 특히 송 교수는 해외 민주인사의 대명사로 국내에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올 9월 그의 귀국은 그 자체로 반민주와 반인권으로 점철됐던 과거의 매듭을 한 가닥 풀 수 있는 역사적인 계기였다.
그러나 공안세력은 이러한 역사의 진보를 그저 보고만 있지 않았다. 국정원은 송 교수를 재물 삼아 국가보안법의 건재를 과시했고, 이미 폐기처분된 전향공작을 교묘하게 부활시켰으며, '거물급 간첩'을 만들기 위해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서슴지 않았다. 검찰은 한술 더 떠 수사과정에 성실히 응해 왔던 송 교수의 완전한 전향을 유도할 목적으로 10월 22일 아예 그를 구속했고, 더욱 철저한 반성과 자백을 요구하며 한 달여만에 끝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를 결정했다. 조중동 등 수구언론들은 송 교수를 아예 간첩으로 낙인찍고, '전향 없이는 처벌'뿐이라는 입맛에 맞는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설파했다.
이 과정에서 양심·사상의 자유, 무죄추정의 원칙 등 송 교수 개인의 인권은 무참히 유린당했으며, 그의 귀국을 계기로 화해와 평화, 인권의 시대로 한 걸음 나아가길 희망했던 국민들의 바람은 여지없이 짓밟혔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사법처리는 절대 반대한다'는 인권단체 등 각계각층의 요구는 처음부터 무시됐다.
송 교수에 대한 '빨갱이 사냥'은 국가보안법의 끈질긴 생명력을 다시 한번 보여줬고, 노무현 참여정부의 시대에도 공안세력이 화려하게 활개를 칠 수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했다.
5. '2003년 전태일들', 몸뚱아리 내던져 노동탄압에 항거 (74.2%)
새해 벽두, 처참한 노동탄압의 현실에 항거하며 두산중공업 배달호 씨가 자신의 몸을 불살라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10월에 들어와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과 곽재규 조합원, 세원테크의 이해남 위원장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와 신종 노조탄압의 대명사로 떠오른 손배·가압류를 죽음으로 고발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이용석 비정규직노조 광주전남본부장은 저임금, 장시간노동, 만성적 고용불안에 인격적인 모멸까지 감내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자신의 몸을 태워 증언했다. 어느 한 해고 노동자는 '1970년 전태일의 유서와 2003년의 유서가 같아야 하는' 이 참혹한 현실에 절규했다.
이미 1998년 구조조정 이후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려왔다. 그러나 그 시절을 간신히 견뎌낸 노동자들에게 찾아온 것은 노동현장에서의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공권력의 일방적인 사용자 편들기, 용역깡패를 동원한 노조 파괴였다. 정부가 앞장서서 공공부문에서부터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반노동, 친자본 정책이었다.
새 정부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이라는 공약마저 저버린 채 '해고는 보다 쉽게, 파업은 보다 어렵게'를 목표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사용자 대항권의 강화를 중심 내용으로 하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강행하고 있으며, 노동운동을 적대시하는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거기에 더 나아가 경제자유구역, 투자자유협정을 서둘러 안착시키려는 정부의 정책 기조는 더욱 암울한 노동권의 침해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전면적인 노동권 부정의 상황에서 표출된 노동자들의 분노에 대해 정부는 되레 강경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이 내년에 다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6. 터널 속 이주노동자…강제추방에 '노예노동제'마저 유지 (55.7%)
지난해 3월 발표된 '불법체류 방지 종합대책'의 공포는 올해까지 이어져 이주노동자들을 위협했다. 강제출국 조치가 올해 1월과 3월 잇따라 유예되면서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실낱같은 희망을 안겨다 주었지만 이도 잠시, 올해 7월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의 병행 실시를 골자로 하는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 법의 특례조항에 따라 국내에 체류중인 40여만명 이주노동자 중 체류기간이 4년이 넘은 20여만 명을 비롯해 정부의 '선택적 합법화' 대상에서 제외된 이주노동자들은 '단속'과 '추방'의 표적이 되었다. 11월 15일 강제출국 시한이 임박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은 '추방' 대신 '죽음'을 선택했다. 11월 11일 스리랑카 출신 다르카 씨가 지하철 선로로 뛰어내린 데 이어 이튿날 방글라데시 출신 비꾸 씨도 일하던 공장 안에서 목을 맸다.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씨는 귀향선을 타고 가다 바다로 몸을 던졌고, 우즈베키스탄 출신 브르혼 씨도 인천의 한 공장 화장실에서 목을 매는 등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에 항거하는 죽음이 계속됐다. 마구잡이 단속과정에서 인권을 유린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이대로 내쫓길 수는 없다""는 이주노동자들은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며 11월 12일부터 경남, 마석, 명동성당, 성공회서울대성당 등 전국 곳곳에서 농성투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개의치 않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인간사냥'의 고삐를 죄어나가고 있어 이주노동자 문제는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극한의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더욱이 끔찍한 사실은 7월 통과된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이 '현대판 노예제도'라 불리는 산업연수생제도를 그대로 유지시킨 것은 물론이고, 새로 도입된 고용허가제 역시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들은 지금 캄캄한 터널 속을 지나고 있다.
7. 농민 이경해 씨의 죽음, 자본의 탐욕을 찌르다 (48.5%)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농민들의 힘겹고 가난한 삶마저 자본의 주머니를 불리기 위해 짓밟으려는 WTO 5차 각료회의가 끝내 한 농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WTO가 농민을 죽인다."" 9월 10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WTO 5차 각료회의(아래 칸쿤회의)를 저지하기 위해 참가한 한국 농민 이경해 씨가 이 같은 선전물을 가슴에 단 채 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이 쳐 놓은 바리케이드 위에서 지니고 있던 칼로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자본의 탐욕이 낳은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당시 칸쿤회의에서는 새로운 무역체제를 출범시키기 위한 여러 협상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수출보조금과 국내보조(추곡수매제 등)의 감축 등을 목표로 하는 농업협정. 이는 거대 농업자본과 경쟁해야 하는 제3세계 농업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농민들은 물론 빈국과 개발도상국마저 반대표를 던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경해 씨의 죽음으로 회의장 밖에서의 투쟁이 가열되고, '투자자유화협정'을 목표로 했던 '싱가포르 이슈' 협상에 대한 이견이 평행선을 달리자, 회의 마지막날 의장은 합의 실패를 선언하고 회의를 종료해 최종선언문 도출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전면적인 농업개방으로 농민을 말살시키려던 비인간적인 세계화가 또 다시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곧 농민들에게 희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칸쿤회의는 결렬되었지만 WTO 협상 자체가 취소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칸쿤에서 중간 점검을 했던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오는 15일 제네바에서 고위급 일반이사회가 개최돼 협상 재개 방안을 본격 논의하게 된다. 또한 이미 국내에서도 정부의 기만적인 농업정책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등 농산물 개방 정책은 농민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
쌓여 가는 농가부채와 개방정책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린 농민들은 한해 100여명이 넘게 농약을 마시고 죽음의 길을 택하고 있다. 결국 정부가 농업개방정책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거부하고 농가부채를 해결할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이경해 씨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8. 국정원이 쏘아올린 감시위성, 테러방지법 재추진 (47.4%)
국가정보원의 권한 강화 음모, '테러방지법' 입법 시도가 2003년 하반기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9월 국정원은 지난해 제정이 무산된 테러방지법의 수정안을 다시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어지자,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주요 3당의원들은 공동으로 새로운 수정안을 발의하고 11월 14일 정보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이 안을 통과시켰다. 독소조항 중 일부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비밀정보기관인 국정원 산하에 대테러센터를 두고 행정기관들의 활동을 기획·조정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반인권, 반민주적 악법이라는 본질은 그대로 유지됐다. '테러'라는 모호한 개념에 기대어 국정원이 군 특수부대의 출동을 요청할 수 있는가 하면, 외국인에 대한 사찰과 출입국 규제도 더욱 강화할 수 있도록 했다. 법원의 허가 없이 가능한 감청 권한이 확대된 것도 물론이다.
이에 2001년부터 테러방지법의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싸웠인권사회단체들은 2003년에도 '테러방지법 제정반대 공동행동'을 구성하고 입법 재추진을 막기 위해 나섰다. 9월 30일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개최해 테러방지법 반대 운동의 포문을 열었고, 10월과 11월에는 국회의원들을 만나 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알렸다. 국제앰네스티,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국가인권위원회, 대한변협 등도 잇따라 국회에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국회 정보위에서 법안이 통과된 11월 14일에는 인권활동가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를 외치다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11월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 테러방지법안은 위헌적이라는 반대 의견이 많이 제기됨에 따라 일단 급행 통과의 위기를 넘긴 채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이라크 현지 한국인 피격 사건 이후 정부가 12월 2일 테러방지법 제정을 조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제2의 보안법 출현이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8. 잇단 생계형 자살, 빈곤이 부른 손짓 (47.4%)
'카드빚과 은행빚에 시달리던 주부가 아이들과 함께 투신 자살', '생활고 비관으로 일가족 4명 음독자살', '70대 할머니, 생활고 못 견뎌 장애손녀 살해' 등 생계형 자살과 사망 소식이 올해 연일 신문지상을 오르내렸다.
올 들어 생활고나 빚에 내몰려 자살을 선택한 사람은 하루 평균 3명꼴.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00년에는 생활고, 사업 실패에 따른 자살이 786건이었지만, 2001년 844건, 2002년 968건 등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으며, 올 7월까지만 해도 이미 408명이 목숨을 끊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생계형 자살이 잇따르는 요인에는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사회보장 체계의 허술함이 자리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지 못한 현실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게다가 장기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대부분의 서민들은 실업 혹은 불안정한 고용상태가 지속되면서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빚을 지게 되고, 여차해서 보증을 잘못 섰거나 환자가 생겨 큰돈을 끌어다 쓰면, 막대한 채무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생계형 채무는 또 다른 빚을 낳게 되고, 악순환을 끊고 싶은 유혹은 이들을 죽음 외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몬다. 이는 분명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사회적 타살'이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최저생계비를 올 최저생계비 35만6천여원에서 단지 1만원 가량 인상한 36만8223원으로 발표했다. 또한 사회복지예산은 올해 11조1300억원에서 9.2%가 증가한 12조1600억여원에 불과하다. 2년 전 겨울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주장하며 노상농성을 전개하다 참담한 외면 끝에 결국 자살로써 생을 마감한 최옥란 씨의 죽음으로부터 우리 사회는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셈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얼음장 최저생계비'에 기대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
10. 집시법 개악 위기…'집회금지법' 비난 확산 (42.3%)
'외교공관 1백미터 이내 집회 전면금지는 위헌.' 10월 30일 헌법재판소는 명백한 위험성이 전제되지 않았는데도 외교공관 주변의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규제라고 결정했다. 미대사관과 같은 외교공관 앞은 물론이고, 외교공간의 유치를 통해 집회가 봉쇄돼 온 집회·시위의 성역들을 되찾게 만든, 오랜 가뭄 끝의 단비 같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오래가지 않아 배신으로 반전됐다. 11월 들어 노동자대회와 부안 등에서 폭력시위가 등장하자 대통령은 그러한 폭력시위가 일어나게 된 원인을 찾아보기는커녕 불법시위 엄단 지시를 내렸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평소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아래 집시법) 개정을 호시탐탐 노려왔던 경찰은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적극적인 로비를 펼쳤다. 행자위 법안심사소위는 공청회 한번 없이 11월 18일 경찰청의 의견을 대폭 수용한 개정안을 작성하였고, 그 이튿날 행자위 전체회의에서 다수결로 이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현행 법률에서도 지나치게 많은 집회 제한·금지 조항으로 문제가 빚어지고 있는 현실은 외면한 채, △주요도로 행진 금지 △학교나 군사시설 주변에서 집회 금지 △폭력시위를 이유로 동일 목적의 집회 금지 △침묵시위만 가능할 정도의 소음규제 △사복경찰관의 집회 출입 허용 등의 독소조항을 대거 강화하여 사실상의 '집회금지법'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더욱이 집회의 내용과 형식, 방법마저 경찰이 쥐락펴락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찰에게 과도한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다. 인권단체들과 헌법학자는 물론 국가인권위원회와 대한변협이 반대 의견을 내고, 국회 내에서도 위헌 논란이 불거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경제5단체들은 집시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주문하고 나선 반면,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밀실입법을 규탄하고 즉각적인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금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 밖에 △두산중공업 배달호 씨 분신과 손배·가압류 쟁점화(38.1%)와 △사회보호법 폐지 투쟁(38.1%)은 아쉽게도 공동 11위를 차지하면서 그 뒤를 이었다. 또 △이어진 장애인 추락 참사(29.9%)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 발의(29.9%) △헌법재판소 외국공관 100m 집회 전면금지 위헌 결정(26.8%) △고 김옥분 씨(수지김) 가족 국가배상판결(25.8%) △대구지하철 참사(20.6%) △각종 집회에서의 경찰폭력 기승(19.6%) △백혈병 환자들 죽음으로 내몬 글리벡 약값 결정(17.5%) 등이 올해 주목을 받은 주요 인권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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