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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추방에 내몰린 이주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한 또 하나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9일 서울경인지역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아래 이주지부) 조합원인 자카리아 씨가 단속 기간 중 숨어 지내던 마석 성생공단의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것.
11일 명동성당 농성천막에서 만난 이종사촌 자심 씨에 따르면, 자카리아 씨는 방글라데시 뚤르람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나 98년 8월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한국으로 왔다. 그는 마석 성생공단의 냉장고 제조공장 조립라인에서 일하며 병든 부모님의 약값과 형, 누나 넷, 여동생의 결혼비용 등 생활비를 송금해 왔다. 지병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지난 8월 협심증 증세로 심장 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는 쉴 수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자카리아 씨는 동료들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고 2001년 이주지부에 가입해 열심히 활동했으며 지난해 7월에는 마석분회 대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동료들에 의하면 그 와중에 다니던 공장으로 형사가 찾아와 이주지부 소속 조합원 현황을 캐기도 했다. 이주지부 농성지원을 맡고 있는 이주지부 쏘냐 선전국장은, 지난해 4월 이주노동자 집회에서 자카리아 씨가 선전차에 올라 거리행진을 지도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자기 사진이 오른 것을 보며 좋아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4년 이상 체류 이주노동자들이 대거 해고됐던 11월 10일 다니던 공장에서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갑자기 해고됐다. 그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방도 같이 썼던 주엘 씨도 당시 같이 해고됐고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그는 ""단속 때문에 퇴직금을 달라고 회사를 찾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카리아 씨는 지난달 15일부터 명동성당에서 시작된 '강제추방 반대, 전면 합법화' 농성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마석분회장 마문 씨는 ""아마 이주지부 활동을 하다 잡혀 추방당하면 가족들의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컸을 것""이라며 ""단속 때문에 병원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외롭게 아파하다 죽은 것 같다""며 고개를 숙였다.
쏘냐 씨는 ""자카리아 씨의 외로운 죽음은 한국정부의 대책 없는 단속추방의 결과""라며 ""이런 죽음은 더 이상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주지부는 동료들의 뜻에 따라 국내에서 이슬람식 추모식을 거행하고 명동성당에서 노제를 치른 후 시신을 고향으로 운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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