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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못 들어가게 막는 거예요?"" ""이 문은 의원님들만 다니시도록 되어 있습니다. 뒤로 돌아가세요.""
지난해 가을인가 토론회 참석차 국회 의원회관을 찾아가던 길이었다. 늦겠다 싶어 여의도 전철역에서 황급히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는 의원회관 정문 앞에서 손님을 내려주었다.
'이크, 벌써 10분이나 늦었네.' 예전에 들어가던 입구가 여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 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부랴부랴 정문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자 한 직원이 가로막고서는 못 올 곳에 왔다는 듯한 태도로 뒷문으로 가라고 말했다. ""여기도 문인데 왜 못 들어가냐""고 따져 묻자 방문객 신분확인을 담당하는 민원실이 뒤쪽에 있기 때문이란다. 실랑이를 계속할 시간이 없어 '어디 두고 보자' 씩씩거리며 그 큰 건물을 한바퀴 돌아 결국 뒷문을 찾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보니 방문객을 위한 안내 표지판조차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은 사실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국회 본청에 들어갈 때 거쳐야 하는 민원실도 마찬가지로 건물 뒤편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 앞에 자가용을 대는 의원'님'들을 위해서는 가까운 정문을 활짝 열어두고서 말이다. 민원실을 뒤편에 두어 의원'님'과 방문객이 드나드는 문을 달리 차별하는 데에는 어떠한 합리적 이유도 찾을 수 없다. 다만 국민 위에 고압적으로 군림하려드는 국회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장면일 뿐이다.
지인에게 들으니 사법연수원의 강의실도 앞문은 교수용, 뒷문은 학생용으로 버젓이 구분해 놓았다고 한다. 어느 학교에서는 중앙 현관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교장과 장학사뿐이고, 학생들은 오직 청소할 때만 현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고 한다. '뒷문'으로만 드나들어야 하는 이들의 신세는 가게 뒤편에 나 있는 쪽문을 통해서만 음식을 간신히 사먹을 수 있었던 인종분리시대 흑인들의 신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신분의 위계는 드나드는 문에도 격을 달리할 것을 요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일상화된 차별에 둔감해지도록 요구받고 있다.
그 날의 두고 보자던 결심은 어느새 바쁜 일상에 묻혀 잊혀져가고, 이제 국회를 찾아갈 때면 발길이 절로 뒷문 쪽으로 향한다. 여러 사람이 다니면 길이 된다고 했던가.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길을 하루빨리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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