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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한-칠레 FTA(아래 FTA)가 통과됐다. 국회는 찬성 162, 반대 71, 기권 1명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FTA 비준안을 가결시켜 4백 만 농민들의 생존을 위한 한 맺힌 절규를 끝내 외면했다.
비준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에 지난 수개월 동안 온 힘을 다해 싸워 온 농민들의 눈에서는 허망하고 원통한 눈물이 흘렀다. 경찰은 이날도 7천여 명의 병력을 투입해 벼랑 끝에 서서 저항하는 농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쐈다.
농민들에게 FTA가 몰고 올 농촌의 절망은 결코 낯설지 않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이영수 정책부장은 ""농민들이 FTA 반대투쟁을 끈질기게 진행한 것은 지난 94년 우루과이라운드(아래 UR) 협상 이후 10년 동안의 경험으로 농업시장 개방이 농가를 어떻게 말살시킬 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값싼 수입 농산물은 지난 10년간 전체 농민의 60%를 농촌에서 몰아냈으며, 농가부채를 120%(연간 2-3천5백 만원)나 증가시켰다. 무엇보다 해마다 십여 건씩 보도되는 농민들의 자살이 그들이 처한 생존의 위기를 증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FTA가 이러한 농촌의 몰락에 가속도를 붙게 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가난한 농민들이 이미 칠레 농업을 장악해버린 거대한 다국적 농기업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이다. 칠레는 포도, 자두, 키위 등의 수출에서 세계 1,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 과실들의 연평균 가격 수준은 우리의 5-25%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이 정책부장은 ""FTA는 과실 농가들의 연쇄적인 파산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특정 품목에 생산이 집중될 경우 과잉생산이 초래돼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고 이에 따라 농업 전반이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FTA를 비롯한 농업시장 개방 정책이 예고하는 재앙은 농민들만을 표적으로 하지 않는다. 사회진보연대 류미경 정책부장은 ""세계 농산물 유통량 80%를 5개 곡물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업개방은 한 국가의 식량 생산과 공급을 오로지 돈벌이에 혈안이 된 몇 개 기업에게 맡기는 과정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시장개방 초기엔 싼값에 농산물을 살 수 있겠지만, 식량 자급율이 떨어질수록 식량에 대한 가격 통제력을 상실하게돼 소수의 초국적 농기업들의 이윤놀이에 식량이 필요에 따라 공급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류 정책부장은 ""이러한 농업시장 개방의 위험성 때문에 WTO 도하개발의제 농업협상에서 미국, 유럽연합 등 농업대국들이 자국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수출 보조금 유지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라며 '농업개방이 대세'라는 정부의 주장을 비판했다.
FTA는 통과됐지만 농업개방에 맞선 농민들의 저항은 계속될 전망이다. 그들의 절망과 분노는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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