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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지난 14일 새벽, 조선업계 세계 1위라는 현대중공업(아래 현중)의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50세)씨가 분신 사망했다. 박 씨의 웃옷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진실된 노동의 대가가 보장되는 일터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고 적혀 있었다.
2002년 현중 사내하청 인터기업에 입사한 고 박일수 씨는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체불, 퇴직금 등의 문제 해결을 요구하다 원청인 현중과 인터기업으로부터 계속된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인터기업 사장은 박 씨의 휴직을 조건으로 임금체불 등의 요구사항을 들어준다고 약속했지만, 그로부터 4개월 후 어떤 개선조치도 없이 박 씨를 강제 해고했다. 박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 모든 것이 현중의 직·간접적인 배후조정에 의한 것이라는 게 현장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박 씨의 분신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응어리진 분노를 마침내 토해내고 있다. 박 씨와 인터기업에서 함께 근무해온 한 노동자는 ""우리에게 근로기준법은 없다. 업체 사장이 부르는 '일당 얼마!'가 근로계약의 전부""라며 ""월차, 연장근로수당, 산재는 모두 딴 세상 얘기""라고 소리를 높였다. 현재 150개에 달하는 현중 사내하청업체의 1만5천 여명 노동자들은 대부분 일당제 혹은 시급제다. 이들은 현중 정규직 노동자들과 한 작업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 임금의 60% 밖에 못 받는다. 그나마 최근에는 일당제가 시급제로 전환되면서 임금은 더 줄어들고 있다.
작업환경과 노동강도로 말하자면 70년대가 따로 없다. 노동자들은 ""비오는 날 가스로 가득한 탱크 안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전기선을 목에 감고 일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잘리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사내하청 노동자""라고 말한다. 지난해에만 현중에서 1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나 과로로 사망했고, 그중 7명이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문제는 사내하청이라는 고용형태다. 현중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2000년경 급속히 늘어나 현재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에 달한다. 이러한 사내하청의 증가는 고용주의 의무를 회피함으로써 보다 수월하게 착취하고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자본가들의 속셈이 숨어있다. 사내하청노조 송충현 조직국장은 ""하청업체는 노동자들을 중간착취하는 인력소개소에 불과하다""며,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조건을 개선시킬 책임은 직접 작업지시를 내리는 현중에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중에게 사내하청의 가장 큰 매력은 노조파괴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송 조직국장은 ""하청노동자들이 노조활동 낌새라도 보이면 현중은 해당 업체를 폐업시킨 다음, 조합원들을 뺀 노동자들만 다른 업체로 고용승계 한다""며 치를 떨었다. 노조를 만들면 업체를 날려버리는 탓에 지난해 설립된 사내하청노조에서 공개적으로 노조활동을 하는 이는 8명에 불과하다.
현중은 박 씨의 죽음 앞에서도 ""박 씨는 우리와 상관없는 제3자""라며 발뺌하기에만 급급해 노동자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다. 한편 또 한 명의 열사가 안치된 영안실 주변에서는 ""하청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낯선' 구호가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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