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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조주은 / 기획: 퍼슨웹 / 펴낸곳: 이가서/ 348쪽/ 2004년 1월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자 가족의 생생한 현실을 보여 준 책이 나왔다. 현대차 노조간부를 남편으로 둔 저자가 울산에서 거주하면서 생산직 노동자의 아내 18명과 가진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이 책은 '가정 중심성'으로 대표되는 노동자 가족 내부의 가부장성을 파헤치고 있다.
현대차 생산직 노동자의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은 생계부양자(남성)와 가사전담자(여성)로 구성된 '가족모델'이 가능케 하는 물적 토대를 제공하지만, 그 대가로 남성 노동자들은 일주일 간격으로 반복되는 강도 높은 장시간 주-야간 교대 근무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에 종속된 단순 반복적 노동을 감내해야 한다. 남편들에게 가해지는 극심한 노동강도와 과로사의 위협은 여성들로 하여금 남편을 안쓰럽게 여기면서 '내조'에 주력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남녀의 위계질서와 성별분업은 더욱 공고해지며, 그녀들의 일상 역시 남편의 필요를 위한 '항상적 대기상태'에 놓여있다. 또한 성별과 학력으로 철저하게 위계화된 노동시장 구조와 아내를 '집에 묶어두고' 싶어하는 남편들과 부딪혀야 하는 그녀들에게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정체성 이외에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
저자는 안정적인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가부장적 가족질서를 유지시키고 있는 기업의 가족전략에도 메스를 들이댄다. 이러한 가족전략은 남성노동자들의 이해와 충돌하지 않지만, 모순적이게도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노동에 대한 착취 구조와 가부장의 특권이 서로 맞물려 있음을, 나아가 '가정 중심성'에 대한 강조가 여성에 대한 차별과 소외를 강화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억압하는 기제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저자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듯 이 책에 등장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노동자 가족 전체의 삶으로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가까운 예로 현대차 하청업체 노동자 가족에서 전업주부란 존재할 수 없다. 한달 임금이 100만원도 안되는, 전체 노동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이 당면하고 있는 중층적인 억압구조를 드러내는 일은 또 다른 성찰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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