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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인권영화제를 통해서 소개된 '칠레전투(The Battle of Chile)'를 두고 '근데 왜 인권영화제에서 상영을 했냐?'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들은 바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인권영화보다도 오래도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 영화가 '왜 인권영화냐'는 질문을 받으며, 새삼 칠레전투에 담긴 분노와 눈물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됐다.
1970년 칠레에서는 선거를 통해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한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공산당, 사회당, 군소 좌파까지 참여한 민중연합전선의 후보로 나서 대통령에 당선된다. 기득권 층의 반혁명 공세와 우익정당의 전 방위적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은행, 구리, 철강 등 국가기간산업의 국유화, 어린이들에 대한 무료급식, 토지몰수 등 사회주의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새로운 사회를 향한 칠레 민중의 신념과 열망 속에 아옌데 대통령은 더디지만 한 걸음씩 희망을 현실화시켜 나갔고, 칠레 민중은 73년 3월 총선에서 민중연합 승리로 이에 호응했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파업과 미국의 경제 봉쇄, 더해지는 정치불안 끝에 결국 73년 9월 11일 유혈 쿠데타를 일으킨 피노체트에 의해 선거를 통한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 실험은 끝이 났다.
칠레전투 1, 2부는 73년 3월 좌우의 뜨거운 격론 장이 된 총선부터 9월 폭격에 휩싸이는 대통령 궁에서 최후를 맞는 아옌데 대통령의 마지막 편지로 마무리된다. 역사의 진보와 민중의 힘을 믿는 아옌데의 편지는 대통령 궁의 폭격과 함께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아옌데 대통령의 편지보다도 더욱 지울 수 없는 기억은 3부에 나오는 노동자, 농민,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열망하는 새로운 세상 그리고 신념과 실천을 담고 있는 3부는 칠레전투의 핵심이다.
경제 봉쇄로 부품조달이 안 되는 공장에서 새로운 물건을 발명하며 공장을 지켰던 노동자, 자본가의 매점매석으로 생필품이 부족해지자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던 '민중상점'에서 휴일을 내서 일을 하던 직장인, '한번 죽는 건데, 평생 착취당했던 노동자로 이제 대의를 위해 죽고 싶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노동자의 울림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전해진다. 삶의 현장에서 분출된 민중의 자발적 지향이 펼쳤던 '새로운 사회의 실험', 그것의 실패는 분노와 눈물이다.
민중의 분노와 눈물이 인권이 아니라면 무엇이 인권이 될 수 있겠는가? 칠레전투는 이루지 못한 과거의 혁명을 다룬 오래된, 그저 역사에 남을 기록적인 영화가 아니라 현재에도 끊임없이 진행중인 민중의 마음을 담은 영화다. 그래서 감히, 인권영화 '칠레전투' 보기를 권한다.
◎ 고근예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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