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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활동가들의 13일간의 노상 단식농성이 국회의사당 앞 기습시위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농성단원들조차도 이 투쟁의 파급력과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채 농성을 시작했지만 예상 밖으로 많은 활동가들이 조직되고 함께 하면서 1월 9일 예정대로 마무리되었다. 우리의 요구와는 달리 3대 개혁입법이 임시국회 회기 내에 처리되진 않았다. 그러나 노상에서 굶어가며 진행한 우리의 투쟁은 냉소와 무관심 속에 묻혀 있던 인권단체들의 의지를 정치권에게 확연히 심어 주었다.
그래도 인권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인권활동가들이 인권 회복을 위해 노상 단식농성을 하고 국회의사당에서 기습시위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나 보다. 그저 면피를 위해 농성장을 찾아오는 몇몇 의원들만이 우리들의 소금과 눈을 맞고 돌아갔을 뿐이다. 그리고 울산지역에서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최병국 의원(울산남)의 사무실에 항의방문을 갔을 때 우리를 맞아 준 것은 최병국 의원이나 그의 보좌관이 아니라 무장한 전투경찰이었을 정도로 정치인들은 개혁에 대한 의지가 전무했다.
그간 인권활동가들의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을 비롯한 3대 개혁입법 투쟁은 거대담론에 파묻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국가보안법이 우리의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투쟁은 머리 안에서만 맴도는 투쟁뿐이었다.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가고 가족을 잃고 직장을 잃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고 우리 자신들이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이면서도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투쟁들은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메아리 없이 퍼지는 구호 속에서만 있었다. 거기에는 우리들의 안일함도 일조했다. 누군가, 언젠가 하겠지 하는 안일함. 그렇기에 인권활동가들의 목숨을 건 13일간의 노상단식투쟁은 우리의 안일함을, 그 부끄러움을 일소해보려는 노력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지역에서 3대 개혁법안 투쟁을 준비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었다.
울산으로 내려올 때 버스 창 밖으로는 서울에서 추풍령까지 하얀 눈들의 띠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7일과 9일, 농성단을 힘들게 했던 그 눈이 그때는 그렇게 소담스럽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그 눈 속에서 함께 뒹굴며 투쟁했던 많은 분들이 생각났다. 농성장의 맏형 서준식 대표님, 국회의사당 시위 때 경찰을 호통치시던 문정현 신부님 그리고 링거를 맞아가면서도 끝까지 노상단식농성을 함께 한 활동가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농성을 마치고선 조금은 아쉬워 하던 동료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 모습을 생각하며 나는 '얼음을 깨는 결연한 아침'을 그들과 함께 맞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김석한(울산인권운동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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