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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연말 개악된 집시법은 이미 진행중인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도 금지통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집회 금지 장소의 범위를 엄청나게 넓혔을 뿐 아니라 도심에서는 종래 허용되던 행진마저도 금지한 노무현 정권 최악의 입법이라 할 만하다. 집회의 자유가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집단적 의사표현과 항의를 가능케 하여,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시키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기본권의 하나라는 상식은 이 법 속에서 철저히 부정된다. 이 법은 집회나 시위에 대하여 경찰이 채택해 왔던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이라는 논리를 당당히 법률에 의하여 뒷받침한 것으로, 이미 제안 단계에서부터 '집회금지법'이라는 비난을 받아 온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법이 새로 도입한 내용 중 하나가 소음규제인데, 지난 20일 경찰청은 '집회시 합리적 소음기준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소음규제는 새로 도입된 것이긴 하지만 개악 집시법의 핵심적 문제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왜 하필 ""소음기준""에 대해서 토론회를 개최했을까?
집회의 자유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단시간의 소음 발생을 사회가 수인해야 한다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인정하는 기본적 전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악 집시법이 이를 무시한 채 법률도 아닌 시행령에 의해 결정되는 소음규제를 도입한 것은 그것이 가지는 두 가지 효과 때문이리라. 즉, 누차 지적되어 왔듯이 확성기의 사용이 불가피한 대규모 집회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소음 규제는 금지통고 등의 나머지 규제 수단과는 달리 정량적인 규제의 형식을 띠므로 경찰의 자의적 규제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소음규제를 통하여 경찰은 가장 영향력 있는 집회들을, 가장 객관적인 기준에 의하여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얻게 된다. 더구나 이러한 규제기준이 시민단체들이 참가한 공개토론회를 통하여 마련된다면 그 효과야 이루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번 토론회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소음규제기준 마련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사항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개악 집시법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희석시켜 버리려는 의도가 여기에 숨어 있다.
그러나 사실 이 법의 통과로 정부가 늘 강조하는 '선진적 집회 시위 문화'의 정착은 영원히 물 건너갔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특히 정부 정책에 대한 항의의 뜻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집회와 시위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누구도 보지 않는 장소에서 아무런 효과도 없는 '합법'집회를 하기보다는 불법으로 규정되더라도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는 집회를 선택할 것임은 너무나 분명하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이제라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집회금지법의 한 수단인 소음규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집회보호법으로 만드는 일이다.
◎김종서 님은 배재대학교 법학부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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