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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나스 마사모토/ 그린이: 니시무라 시게오/ 펴낸곳: 사계절/ 69쪽/ 2004년 4월
해방 59돌을 맞아 끝나지 않은 식민지의 고통을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올해는 주요 방송사들이 원폭피해자 2세들이 겪고 있는 가난과 질병의 고통을 본격적으로 제기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국내 최초로 원폭2세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반세기가 지나서야 고통과 절망의 나날들이 조금씩 암흑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핵무기의 참혹성을 알기 쉽게 풀어낸 우리 책을 찾기란 너무나 어렵다.
일본에서 나온 이 그림책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가 원자폭탄의 희생물이 된 역사적 배경과 마침내 '운명의 그 날'이 찾아온 이후의 참혹했던 상황들을 세밀한 그림과 담담한 필체로 잘 그려낸 교양서이다. 원폭이 투하된 직후 사람들을 집어삼켰던 밝은 섬광, 거센 폭풍이 잦아든 직후의 암흑과 곧이어 치솟은 불길,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 등이 사실적으로 재현돼 전쟁과 핵무기의 참혹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림을 그린 니시무라 시게오가 한 해 동안 히로시마에서 살면서 생존자들을 만나 그 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그려내기 위해 공을 드린 덕분일 것이다. 또한 히로시마로 독자들을 안내하는 어린 영혼 타로는 군복과 다름없는 교복을 입고 있어 당시 전쟁의 광기가 어린이들의 삶까지 지배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책 곳곳에 원자폭탄이 제조되기까지의 과정과 핵무기의 과학 원리, 방사능이 사람의 몸에 미치는 영향, 핵실험과 핵발전소로 인해 지금도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 '히바쿠샤'(피폭자), 핵무기를 막기 위한 유엔의 활동과 평화운동 등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실어 고학년 어린이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읽어봐도 좋을 책으로 만든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당시 피폭자 가운데 조선인 2만명도 있었다는 사실을 단 한 번 언급하고 있을 뿐, 조선인들이 왜 그곳에 직·간접적으로 끌려가 있었는지, 지금까지 한국 원폭피해자들의 고통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데는 인색하다. 원폭의 재앙은 일본인들만의 것으로 전유되어 있는 셈이다. 그 날의 기억마저도 식민화된 현실은 과거청산의 과제와 원폭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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