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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일주일 남겨놓은 명동성당 들머리, 불볕 더위 아래 수배자들의 농성 천막이 줄지어 서있다. 언뜻 보기에 한국에서 '가장 많은 수배자들이 모여있는 곳'임을 드러내는 증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이곳은 잡히지 않으려는 자와 잡고자 하는 자들의 열정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장소다.
이렇게 안타까운 명동성당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난주 법무부는 8 15 사면 복권 계획을 보고하면서 수배자와 미결수는 사면 대상에서 아예 빼놓았다. 이 소식이 전해진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오늘 명동성당의 수배자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학생, 노동자들에 대한 체포 영장이 끊임없이 발부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정치수배자를 사면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올해만큼은 꼭 정치 수배자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돼요. 김영삼 정부 때도, 지금 정부도 그냥 넘어가려 하지만 이번에는 국가보안법과 함께 이 사안을 꼭 쟁점화 할 겁니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수배 생활 4년, 명동 농성 82일째를 보내고 있는 유영업(전 한총련 의장 대행) 씨는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전화를 길게 할 수도, 깊은 잠을 잘 수도 없는 고통은 차라리 괜찮아요. 하지만, 알고 있던 사람조차 모르는 척 해야하며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초긴장 상태로 살아야하는 괴로움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거예요."" 애써 수배 생활의 아픔을 태연하게 말하는 그다. 유씨는 7월부터 사회 각계 인사 단체들과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고달픈 수배 생활을 끝내기 위해 바쁘게 일하고 있다.
그리고, 유씨와 이웃하여 '천막' 생활을 하고 있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수배자들도 있다.
""저희 조합의 수배자들은 전부 여성인데 지금 가정들이 모두 엉망이에요. 시어머니와 어머니들이 그 집에 와서 살림을 하는 실정이니…"" 말끝을 흐리는 사람은 농성에 돌입한 지 68일 째가 된 보건의료노조 차수련 위원장이다.
""정말 경제범들과 선거범들 만을 풀어주고 여기 사람들은 그냥 둔다면 속이 부글부글 끓을 것 같아요."" 오늘은 이리도 화가 난 차 위원장이 6명의 동료 수배자들과 함께 당국에 수배해제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간 날이다.
현재 명동성당에는 33여명에 달하는 학생, 노동자, 농민 수배자들이 있어, 마치 수배자 박람회장을 방불케 한다. 사면 계획 발표 후, 민주노총과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 등 사회 단체들은 수배자들에 대한 수배 해제를 당국에 촉구한 바 있다. 광복절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명동성당 사람들은 '국민의 정부'가 과연 어떠한 답안지를 내올지 궁금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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