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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력집단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이 유령은 불가사리처럼 불가사의한 특징을 지녔다. 이익보존이라는 껍질을 쓰고 비판을 받을수록 몸집이 불어난다. 이 앞에는 상식도, 원칙도 심지어 법도 통하지 않는다. 압력집단은 본질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산물이다. 이익관계의 조절기능을 개별결사체의 각개약진에 맡기는 것이다. 힘센 집단에게 원천적으로 유리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물론 압력집단의 옹호자들은 할 말이 많다. 건전한 경쟁과 이익대변이 뭐가 잘못되었냐는 것이다. 국가가 압력집단의 게임규칙을 정한 상태에서 경기가 벌어지지 않느냐는 것이다. 모든 사람, 모든 집단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스피커를 가질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런 엉터리 주장이 없다. 강한 집단은 언제, 어떻게, 어떤 경로로 스피커를 써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안다. 강한 집단일수록 성능 좋고 듣기 좋은 스피커를 갖고 있다. 정책결정자가 어떤 세레나데에 넘어가는지 영악하게 꿰고 있다. 세레나데에 넘어가지 않으면 행진곡을 틀기도 하고 그것도 안 통하면 금속성 파열음을 울린다. 이에 비해 약한 집단의 스피커는 엉성하기 그지없다. 곡조도 엉망이고 그나마 잘 들리지도 않는다. 자기가 스피커를 틀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바야흐로 압력집단 정치의 문제가 인권운동에도 큰 과제로 등장했다. 지금까지 우리의 인권운동은 주로 국가를 상대해 왔다. 법을 바꾸거나 제도를 바꾸거나 담당자를 바꾸라고 요구해 왔다. 국가주의의 폐해에 대항하는 당연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인권침해의 주체가 조금씩 다변화하고 있다. 이 징조의 대표적인 예가 압력집단, 더 정확하게는 사익 추구 압력집단의 괴이한 부상이다. 이러한 불가사리의 출현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정치적 권리라는 절차가 충족되면서 사회적 권리라는 내용이 함께 충족되었다는 환상 때문이다. 시민정치적 권리가 공권력 침해로부터의 소극적 자유를 지키는 것이라면, 경제사회적 권리는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자유이다. 문제는 이 적극적 자유를 국가도, 민간도 모두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가는 불평등의 결과를 외면함으로써, 민간은 자원의 이성적 배치를 방해함으로써 각각 적극적 자유의 침해에 기여할 수 있다.
압력집단이 인권침해에 가담하는 지점이 바로 이 곳이다. 사회경제권의 한 중요한 축인 의료가 압력집단 정치에 휘둘리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 힘센 압력집단의 반이성적 행동은 인권의 유린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해온 민주, 자유, 인권의 세상이 특수이익의 어처구니없는 진군으로 흔들려서야 되겠는가. 인권운동이 민간의 갈등영역에 팔짱끼고 있을 수 없는 까닭이 여기 있다.
조효제 (성공회대 시민사회단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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