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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는 지난 7월 27일부터 5 18 광주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가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실상 마지막이 될 이번 4차 심사가 공정하게 진행되기를 애타게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 기막힌 사연을 소개한다.[편집자]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강진농고 재학 중 광주에 올라가 계엄군에게 머리를 맞은 후 숨진 고 김종석 씨의 유가족이 이웃의 허위신고로 5 18보상금 사기범으로 몰린 채 수난을 겪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93년 6월. 88년 광주민주화운동 1차 보상 대상자에 선정되어 93년 1억 3천여 만원의 보상금을 받은 고 김종석 씨의 가족에게 강진군 장산리의 마을이장 김대환 씨는 마을발전기금으로 2,000만원을 희사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김종석 씨의 어머니 이계순 씨는 이유가 없다며 거부했고, 마을이장 김씨는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돈을 요구하였다. 끝내 이계순 씨가 돈을 내놓지 않자 이장 김씨는 '김종석 씨는 5 18때 계엄군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라 정신이상으로 중학생 때 병사하였다'는 내용으로 투서를 하기에 이르렀다.
광주시청은 이장 김대환 씨의 투서를 접한 후 곧바로 고 김씨의 부모를 5 18보상금 허위신고자로 경찰에 수사의뢰 했으며 이계순 씨와 김씨의 아버지 김문규 씨는 곧바로 검찰에 의해 사기혐의로 각각 구속과 불구속 기소되었다. 그후 이계순 씨는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95년에 출소하였으며, 아버지는 1년의 형을 언도 받았지만 집행되지는 않았다. 그 후 아버지는 홧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작년에 끝내 숨졌고, 환수조치 명령 이후 작은 아버지도 충격을 받아 숨졌다고 한다. 5.18 유가족이 파렴치범으로 낙인찍히며 온 가족이 풍비박산 난 경우이다.
고 김씨의 누나인 김안숙 씨는 당시 시청공무원들이 조금만 사실관계를 확인하였어도 마을이장의 투서가 명백한 허위임을 알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입증 서류를 내보이며 김씨가 주장하는 진실은 누가보아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극히 상식적인 것이었다.
첫째, 동생 김씨가 중학생 때 죽었다는 주장은 80년 강진농고 재학 당시 종석이의 생활기록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을이장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며, 둘째,김씨가 정신이상자로 죽었다는 사실은 중 고등학교 내내 축구부원으로 활동했을 정도로 건강하다는 사실로 거짓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당시 광주시청의 수사의뢰를 받은 전남지방경찰청의 수사가 온갖 의혹투성이라고 주장했다. 초동수사 단계부터 객관적인 증거 대신, 마을사람들의 진술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것이다. 진술을 한 마을사람들 중 상당수가 프린스호텔에 똑같은 날 모여 진술하였고,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정신이상으로 죽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또한, 경찰은 김씨가 80년 5월 머리를 다친 후 치료를 받았던 강진소재 천일의원이 당시에는 폐업상태였다고 수사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김씨가 강진군보건소에 확인한 결과 천일의원은 78년 폐업했다가 80년에 다시 병원을 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버님도 홧병으로 돌아가셨다""며 ""최근 열리고 있는 4차 보상심사를 통해 아직도 탐진강 가에 묻혀 구천을 떠돌고 있는 종석이와 가족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란다""며 공정한 심사를 기대했다.
한편, 고 김종석 씨의 가족들은 당시 마을이장을 상대로 모해위증죄로 형사고소를 했으며, 광주민주화운동 4차 보상심의위원회에 보상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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