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사람이 구속되면 구치소에 가서 수의를 입는다. 囚衣-그 의미가 죄수복이다. 구속이 되어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아니한 상태의 미결수는 죄를 지은 것으로 확정된 사람이 아니라, 죄를 지은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가 입는 제복을 수의로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지만, 달리 별도의 용어가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
구치소 안에서 죄수복을 입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미결수로 하여금 형사재판을 받는 법정에서 수의를 입게 하는 것은, 미결수의 신분과 너무 어긋나는 모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아직 죄를 지은 것으로 확정된 사람이 아닌 피고인에 불과한데도, 그에게 수의를 입도록 강요하면 결국 재판의 처음부터 그를 죄수 취급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결수에게 수의를 입게 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로서 위헌논란이 되어 왔고, 지난해에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확인결정을 하였다. 법무부도 서울지역 법정을 중심으로 미결수들이 원하면 사복착용을 할 수 있도록 단계적인 시험조치를 시행하였다.
그 조치가 시행된 처음 무렵에는 형사법정에서 미결수들이 누르스름한 수의를 벗고 깔끔한 사복차림으로 재판을 받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차 그러한 변화된 모습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점차 사그라들어 이제는 예나 다름없이 미결수들 대부분이 수의를 입고 재판을 받는데 도로 익숙하여졌다. 어쩌다 사복을 갈아입고 나오면 눈에 띌 정도이다. 미결수의 사복착용제도는 시험단계에서 정착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주저앉은 상황이다.
이와 같이 사복착용이 정착되지 않는 원인이야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드러나는 이유는 미결수들 스스로 사복착용을 회피하는데 있고, 미리 신청하여 갈아입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구치소안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부적'같은 미신 때문이다. 사복을 입으면 판사가 얄밉게 생각하고, 수의를 입어야 동정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떠도는 것이다.
수의를 강요하고 억지로 입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본인들이 법정에서도 굳이 사복을 입지 않고 거리낌없이 수의를 선택하여 입는 것이라면 인권침해일 것도 없고, 아무 문제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법정에서 수의를 입고 재판을 받는 것 자체가 누구의 강요나, 선택에 의한 것이든, 형사재판에서 지켜야 할 인권의 기본적 상황이 어그러져 있음은 부인할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사복착용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마련하여야 하는 것인지, 사복착용을 '의무화'한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존중할 것을 '의무화'하는 것인데,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문화가 몸에 밸 때까지는 그와 같은 강요로서의 '의무화'과정이 필요한 것인지. 그것만이 문제의 정답인지.
강금실 (변호사 / 지평법률사무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