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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종교'가 개입된 문제는 참으로 다루기가 까다롭다. 종교 문제를 다룬 영화 감독이나 소설가는 걸핏하면 '특정 종교 비하'의 혐의로 고발되기 십상이고, 종교인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자는 테러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정치권이나 언론도 종교에 대해서는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한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시비를 벗어나기 어려울 뿐더러, 결국 표와 돈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는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학교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에 대해서는 공론화가 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기만 하다. 많은 미션 스쿨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온갖 비교육적 폭력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말이다.
수원에 있는 어떤 학교에서는 이사장의 어머니 기일에 전교 학생이 모여 추도 예배를 한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어떤 학교에서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종교 과목의 성적을 깎는다고 한다. 사실 이런 것은 그리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대부분의 미션 스쿨에서 이런 일은 아주 흔하게 벌어진다.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아이에게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점수를 주지 않거나, 예수를 따르는 아이에게 부처에게 절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다. 우리 나라의 종교는 대개 매우 폐쇄적이어서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이나 이해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경우 아이들은 심한 심적 갈등을 겪는다. 정말 두려운 것은 학교가 아이들로 하여금 점수를 위하여 자신의 신앙과 배치되는 행위를 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유일한 것은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멋대로 부려먹는 방법일 것이다.
그들은 정말 이런 짓이 아이들을 그들이 그토록 헌신하고 싶어하는 종교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보기에 그들은 종교적 진리니 교육적 효과 같은 거창한 이득은 물론이고 신도수 확보라는 작은 이득도 얻지 못할 것 같다. 아이들은 종교의 위선을 알아차릴 것이고, 기회주의적 처세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고, 이런 유치한 종교에 치를 떨 것이다. 말하자면 종교도 잃고 교육도 잃고 결국은 신도도 잃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의 하나다. 정부는, 언론은, 시민단체는, 교사는 언제까지 이 문제에 침묵할 것인가?
박복선 (우리교육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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