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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고등법원(재판장 박송하)은 서준식(인권운동사랑방 대표, 본지 발행인) 씨의 '보안관찰처분기간갱신처분취소' 청구를 기각하였다. 우리는 그 기각 사유라는 것의 구절 구절에서 드러난 사법 당국의 가련한 무지와 뻔뻔스런 반인권 의식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법원은 △원고(서준식)가 간첩죄 등으로 처벌받은 범죄사실이 매우 중한 점 △공산주의 사상을 신봉하고 준법서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이후 이런 신념에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현재도 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추단되어 국가보안법 등 보안관찰해당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점 △각종 집회와 시위에 참가하고 있고, 국가보안법에 위반될 가능성이 있는 활동을 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서준식 씨에게 ""아직도 반사회성의 징표를 엿볼 수 있어"" 보안관찰 처분은 적합하다고 하였다.
이같은 법원의 판단에선 보안관찰법이 지닌 인권 유린의 구조에 대한 아무런 가책도 찾아볼 수 없다. 옛날에 선고받고 끝나버린 사건을 다시 들먹이며 불이익 처분을 내릴 수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보안관찰법은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법이며 법원은 그것이 타당하다고 재확인한 것이다.
이밖에도 보안관찰법의 인권침해 소지는 한 둘이 아니다. 보안관찰법은 가족 및 동거인 상황, 교우관계, 월수, 재산상황, 주요활동사항, 여행에 관한 사항 등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거의 무한대의 신고 의무를 강제하는 법이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일상 생활에 코를 처박고 연신 냄새를 맡아대면서 그 당사자에게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다. 당사자의 참여 없이 행정부서에서 자의적으로 보안처분을 내리면 그 대상자는 매일 매시간 족쇄를 끌고 다녀야 한다.
보안관찰법은 한 인간의 속마음을 거울처럼 들여다 볼 권능이 있는 양 그 내심을 억측하여 불이익 처분을 내린다.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내면적 기초가 되는 정신적 자유로서 어떠한 사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심에 머무르는 한 절대적인 자유이므로 제한할 수 없다는 헌법과 국제인권법의 규정에 보안관찰법은 정면에서 침을 뱉어 대는 것이다.
그간 당국이 서준식 씨를 표적 삼아 자행한 일들만 보아도 보안관찰법이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가는 확연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공안사범에 대한 효과적인 감시체계의 발동이자 서 씨와 같은 인권운동가의 발목을 낚아채려는 덫을 놓아두는 것이다. 서 씨가 재판에서 선고받은 7년을 다 채우고도 재판도 없이 10년의 옥살이를 더해야 했던 것은 보안관찰법의 아비인 사회안전법에 의한 것이었고, 그 새끼인 보안관찰법은 '유서대필사건'의 진실규명에 힘을 기울였다는 이유로, 당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글을 쓰고 인권영화제를 개최했다는 이유로 서준식 씨에게 두 번의 옥살이를 더 안겨 주었다.
권력과 인권침해는 본래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에 그에 맞선 인권운동이 존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서준식 씨가 10여 년이 넘도록 보안관찰 처분 대상자이면서 그에 따른 보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도 그의 인권운동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서 씨가 벌여온 인권운동을 '반사회성의 징표'로 바라보는 보안관찰법은 인권운동에 대한 보복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서준식 씨와 같은 인권운동가를 일상적으로 박해하고, 수가 틀리면 언제든지 잡아 가둘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법이 아닌 폭력이다.
폭력에 대한 투쟁은 멈출 수 없다. 서준식 씨는 보안관찰법 폐지 운동에 자신이 작은 도구로서 쓰여지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해왔다. 물론 그는 혼자가 아니며 악법과 폭력에 저항하는 모든 자유 양심들이 반 보안관찰법 투쟁에 매진할 것이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시대를 거스른 촌극으로 오랜 세월을 두고 웃음거리로 남을 것이다.
2000.9.28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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